[맷돌고성] “87체제”와 개헌 문제

2026.05.15 06:00:00 15면

 

지난 5월 8일 국회에서는 제10차 개헌안 투표가 있었다. 개헌안은 헌법 전문에 4·19 혁명과 함께 '부마 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의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는 것과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때 반드시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지극히 당연하고도 간단한 내용이지만 야권(국민의힘, 개혁신당)은 정족수를 채울 수 없게 투표에 불참함으로써 무산시키고 말았다.

 

22대 국회 출범 당시부터 개헌의 필요성은 여야 모두가 인정했다. 39년 전인 1987년의 헌법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서 변화된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 속에서 개헌의 당위성은 확산되었다. 금번의 개헌안 표결도 이미 여야가 공감대를 이루었지만 이재명 독재를 언급하며 야권은 불참하고 말았다. 이제 개헌 문제는 6월 지방자치 선거 이후인 하반기 국회에서나 다시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87체제’라고 불리는 지금의 헌법은 6월항쟁 이후 전두환의 폭압정치를 서둘러 끝내야 할 필요 때문에 권력구조 등 많은 부분이 급조되었다. 제왕적 대통령을 피한다며 5년 단임제로 정하다 보니 역대 대통령 모두 임기 중 업적이라는 압박감에 쫓겨 제대로 된 공적 하나 남기기 어려웠다. 이 같은 권력구조 개편을 비롯해 여전히 부족한 인권 보호의 보완은 물론 무엇보다도 국민의 안전 문제가 가장 중요함이 신헌법에 강조되어야 하며 권력 행사 기관에 대한 철저한 견제의 당위성도 있어야 한다.

 

경제적 균등의 문제는 시대에 가장 뒤떨어진 영역이다. 87년에는 상상 할 수도 없었던 비정규직의 문제가 지금 우리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상실케 하고 있다. 또한 작은 국토인 우리의 특성상 토지공개념과 같은 공동의 이익을 위한 공동체 문제도, 다가오는 AI시대에 대한 대비 역시 큰 틀에서 헌법에서 다루어 주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87년의 헌법은 여전히 국민을 위한다는 대원칙에서 허점투성이다.

 

마침 지난 월요일(5월 11일) 경복궁 앞에서는 제 132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이 있었다. 그날은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기를 원하던 우리의 선조들이 죽창 든 손으로 희망이라는 단어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산화한 혁명을 기념하는 날이다. 특히 이번 기념식에서는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기념사가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은 국민주권정부의 핵심적인 가치가 혁명의 근간이자 심장이었던 '대동사상(모두가 평등하게 하나 되는 세상)'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으며 그 숭고하고 뜨거운 대동 정신이 3·1 독립운동을 거대한 도화선으로 삼아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을 거쳐 마침내 촛불혁명과 빛의혁명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으며, 오늘날 대한민국을 전 세계가 부러워하고 주목하는 '모범적 민주주의 국가'로 당당히 우뚝 서게 만든 가장 강력하고 튼튼한 원동력이 되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고자 하는 세상. 그것은 1919년 4월10일 상해의 허름한 공간에서 임시의정원 의원 29명이 모여서 최초의 헌법을 만든 애국지사들의 원(願)이었다. 그것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명확한 원칙으로 구체화 되었고 그 정신은 9차례에 걸친 개헌 속에서도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었다. 이제 그 가치를 지키며 시대정신을 담아낼 개헌안을 만들 차례가 22대 국회이다. 언제까지 말도 되지 않는 정쟁을 핑계로 시대의 요구를 외면할 것인가. 역할을 망각한 의원들, 부끄럽지 않은가.

임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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