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칼럼] 한국 영화계 터널의 끝이 보이고 있는가

2026.05.18 06:00:00 15면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의 흥행 성적이 다소 뼈아프다. 반면에 이명세 감독의 다큐멘터리 <란 12.3>의 흥행은 고무적이다. 희비와 명암이 엇갈리지만, 전반적으로 한국 영화계가 어두운 터널의 끝에 와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하게 만든다. ‘상황이야 어떻든 되는 영화는 된다, 모든 게 엄살이다’라는 ‘적자생존’식의 가학적 논리 구조에서는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최근 “심폐소생술을 언급할 만큼 최악의 상황이었던 영화와 영상 산업이 다행히 조금씩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자화자찬의 진단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정부 거버넌스의 문제 인식이 비교적 정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논란 중인 홀드백 문제와 스크린 상한제 이슈에 원칙을 정하기 위해서도 조속한 시일 내에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도록 지시했다. 제작자, 창작자 측에서 줄기차게 요구해 온 단년도 중심의 제작 지원 제도에 대한 개선 작업도 병행 중이다. 영진위로부터 제작을 지원받은 작품의 경우 그해 안에 제작을 완료해야 한다는 규정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영화는 기획부터 제작 완료까지 짧게는 2년 길게는 3년이 걸리는데 해당 제도는 현실을 무시한 행정편의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그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수정에 나선 셈이다.

 

영화단체들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규제를 놓고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서도 문화체육관광부는 비교적 열린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에 대해 이전 정부가 예산 집행의 부적정성과 불공정성을 빌미로 사업 운영 주체 선정을 협약에 의한 것이 아닌 공개경쟁 입찰로 전환한 것은 사업의 특수성을 무시한 것을 넘어 사업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높았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영화계의 이 같은 비판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획예산처 등 타 부처와의 조율과 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시장의 회복과 활성화에 그간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영화계에 대한 전 정부의 거버넌스 인식이 이념 편향적이었던 것에 주원인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의 해결은 해법의 마련에 앞서 그 문제를 올바로 파악하고 있는지, 그 인식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달려있다. 일단 현 정부는, 방향은 잘 잡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행 과정의 속도, 타이밍이 문제일 수 있다. 혹여나 백화제방식으로 나열되고 있는 수많은 현안이 자칫 1년, 2년이 걸려서는 모든 일이 도루묵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서둘러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영화계로서는 새로운 미학을 보여주는 작품, 시장의 외연을 확대하는 작품의 개발에 실로 노력을 쏟아야 할 때이다. <란 12.3>이 다큐멘터리로서 5월 17일 현재 누적 관객 수 24만 932명을 넘기며 빅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이 작품을 대중들이 ‘새로운 영화’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영화는 의미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내 이름은>은 대중 관객들이 재미보다는 의미에 방점을 두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극영화로서는 다소 저조한 성적을 가져가게 한 것으로 보인다. <내 이름은>은 17일 현재 관객 수 21만 1975명을 기록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3일 오전 10시부터 6000원짜리 할인 쿠폰 225만 장을 배포했다. 오는 7월 추가 배포할 225만 장까지 총 450만 장을 나눠 주며 예산상으로 271억 원을 영화산업에 지원하는 셈이 된다. 할인 혜택에 따라서는 티켓을 4000원 혹은 1000원 수준으로도 살 수 있게 된다. 일시적이나마 관객 수가 급증할 것이다. 쿠폰 배포는 미봉책이다. 이것이 어떤 효과로 이어질지는 각종 이슈에 대한 정책의 연속성과 승부수에 달렸다. 2026년은 국내 영화산업 회생에 마지막 기회가 되는 해이다. ‘시간’을 잊으면 안 된다.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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