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불교의 흔적을 따라 걷는 문화기행 마지막 여정은 문수산마애보살상(경기도 유형문화유산)과 용덕사석조여래입상(경기도 문화유산자료), 마북리 석불입상 및 석탑(용인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이어진다. 고려 전기에 조성된 이들 문화유산에는 내세의 안녕을 기원했던 당시 사람들의 신앙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려 전기는 불교가 국가와 민간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렸던 시기다. 왕실뿐 아니라 지방 사회에서도 불상과 석탑 조성이 활발하게 이뤄졌으며, 지역마다 독자적인 조형 양식이 나타났다. 용인에 남아 있는 문수산마애보살상과 용덕사석조여래입상, 마북리 석불입상 및 석탑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조성된 문화유산들이다.
◇ 문수산마애보살상
문수산마애보살상은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 문수봉 정상 부근 바위에 조각돼 있다. 지난 1984년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문수산 정상 동쪽에는 문수사로 추정되는 절터가 있으며, 그곳에서 약 40m 떨어진 암반에 높이 약 2.7m의 마애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문수봉 일대는 오래전부터 불교 신앙의 공간으로 활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에 남아 있는 절터는 이 지역이 고려시대 수행과 신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자연 암반에 직접 새긴 마애불은 별도의 전각 없이도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어 산악 신앙과 결합한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두 보살상은 모두 연화대좌 위에 선 입상 형태로 조각됐다. 우측 보살상은 머리가 신체에 비해 다소 크게 표현됐으며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고 목에는 삼도가 표현돼 있다.
가슴에는 둥근 옷 주름이 새겨져 있고 허리에는 방울을 단 듯한 매듭이 표현돼 있다.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채 가슴 높이까지 올렸고, 왼손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리고 있다. 하반신에는 치마 형태의 천의를 입고 있으며 옷 주름과 함께 다리 윤곽도 표현됐다.
좌측 보살상은 머리를 높게 틀어 올렸으며 상호만 보면 여래상처럼 보이지만 옷차림을 통해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손동작은 우측 보살상과 대칭을 이루며 하반신 표현 양식도 유사하다.
두 불상 모두 하체가 상체보다 짧고 팔이 길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손이 크게 조각돼 신체 비례가 다소 독특하게 보이며 상체의 옷 표현도 간략화돼 있다. 고려 전기 불상은 통일신라의 조형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점차 지방화·대중화되는 특징을 보이는데, 문수산마애보살상 역시 세부 표현보다 상징성과 전체 형상을 강조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대담하고 단순한 조각 수법으로 미뤄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용덕사석조여래입상
용덕사(龍德寺)는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다. 용덕사석조여래입상은 용덕사 미륵전 안에 보관돼 있으며 높이는 약 2.3m다. 목과 복부가 절단됐던 부분은 수리돼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 불상은 원래 이동읍 천리 용덕저수지 아래에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과거에는 '천리 석조여래입상'으로도 불렸다. 신라시대 천리 일대에 있었던 거밀현 관아에서 모시던 불상으로 전해진다.
머리 부분에는 나발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얼굴의 눈과 코는 후대에 수리된 것으로 보인다. 목 부분의 삼도는 두껍게 표현됐으며 목과 가슴, 허리 부위에서는 현대 보수 흔적도 확인된다. 하체는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상체 일부가 훼손되고 수리됐지만 전체적인 불상의 형상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불상은 양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 방식의 법의를 입고 있으며 옷 주름은 'Y'자형 우전왕상 형식으로 표현됐다.
특히 오른손에 들고 있는 연봉 형태의 지물이 눈길을 끈다. 이 연봉은 용화봉으로 불리며 미륵불의 상징물로 알려져 있다. 미륵신앙은 고려시대 민간에 널리 확산됐던 불교 신앙 가운데 하나로,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향을 염원했던 백성들의 바람이 담긴 신앙으로 해석된다. 용덕사석조여래입상은 용화봉을 지닌 사례로 알려진 불상으로 조성 시기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 마북리 석불입상 및 석탑
마북리 석불입상 및 석탑은 기흥구 마북동 구성삼거리 인근에 위치해 있다. 현재 석불입상은 전각 안에 안치돼 있으며 석탑은 그 옆에 자리하고 있다.
석불입상은 용화전(龍華殿)이라는 전각 안에 모셔져 있으며 높이는 약 2.1m다. 전체적인 모습은 묘소의 석인상과 유사하며 직육면체 몸체에 높은 관을 쓰고 있다. 얼굴은 긴 네모꼴에 턱을 둥글게 처리했으며 눈은 크게 치켜뜨고 코는 높고 입은 굳게 다문 형태다.
간결한 얼굴 표현에서는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두 손은 배 앞에 모으고 있으며 가슴에는 '卍(만)'자가 양각돼 있다. 옷 주름은 손과 배 아래쪽에만 일부 표현돼 있다.
불교 법복이 아닌 관복 형태를 띠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이 때문에 장승의 일종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예로부터 이곳이 '용화전'으로 불려온 점 등을 고려할 때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미륵불로 인식돼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북리 석탑의 원래 위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흩어져 있던 부재를 마을 주민들이 현재 위치로 옮겨 모아 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기단부는 널따란 판석형이며 탑신석은 1개만 남아 있다. 다만 탑신석의 높이가 높고 네 면을 고르게 다듬은 것으로 보아 원래는 정연한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옥개석은 모두 4개가 남아 있으며 다듬은 솜씨가 비교적 정교하다. 1층 옥개석은 옥개받침이 4단으로 이뤄져 있고 지붕 끝선이 현수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고려 초기 석탑의 특징으로 꼽힌다.
석불과 석탑이 함께 남아 있다는 점은 과거 이 일대에 불교 신앙시설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현수곡선을 이루는 옥개석과 독특한 조형의 석불은 고려 전기 지방 불교문화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받는다.
마북리 석탑 역시 형식상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용인 곳곳에 남아 있는 이들 문화유산은 고려시대 지방 불교문화의 흐름과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석불과 석탑은 신앙의 대상인 동시에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 경기신문 = 최정용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