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갑의 난독일기] 부스러기

2026.07.09 06:00:00 15면

 

울음도 기쁨일 수 있다.

갓난아기의 울음이 그렇다. 그때의 울음은 울음이기보다 경이로움에 가깝다. 물론 경이로움에도 생명이 깃드는 절차는 있다. 생명의 씨앗은 제 힘으로 울어야 싹튼다. 울음은 세상을 열기 위한 아기의 첫 관문이다. 탯줄을 끊고 나온 아기는 엄마라는 우주를 배꼽에 달고 세상의 문턱을 넘는다. 그런 점에서, 아기의 첫울음은 엄마라는 바다를 뭍에 토해내는 거룩한 작별이다. 잉태의 바다와 작별하는 아기의 첫울음에는 어떤 냄새가 스며 있을까.

갓난아기의 입술은 우주의 속살을 닮았다. 닮아도 너무 똑 닮아서, 맑고 여린 것이 한 톨의 잡티도 묻어 있지 않다. 혹시 당신은 알고 있는가. 나는 갓난아기의 입술보다 순한 걸 알지 못한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서, 순수라는 말과 만나면 나도 모르게 그것이 먼저 떠오른다. 세상을 향해 오물거리는 갓난아기의 입술 말이다. 생각해 보면 당신과 나도 그 순수의 문을 열고 세상에 나왔다. 그때 토했던 첫울음 또한 어김없이 경이로웠을 것이다.

 

여전히 울음은 기쁨일 수 있는가.

누군가 내게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 내게는 순수가 남아있지 않다. 첫울음을 토하던 경이로움은 미세먼지가 되어 흩어진 지 오래다. 여전히 배꼽을 달고 살지만 배꼽 이전의 역사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 어미의 바다를 망각해 버린 내게도 아비가 될 자격이 남아있는가. 부끄러운 짓을 할 때마다 내 안의 나에게 묻곤 한다. 물론 답은 빤하다. 내가 쏟는 울음은커녕 웃음조차도 기쁨일 수 없다.

그러기엔 너무도 많은 잡것이 내 입안에 산다. 삭은 냄새가 목구멍으로 올라오고, 쓴물이 혀뿌리까지 고인다. 양치질할 때마다 구역질이 나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칫솔로 닦아내기엔 입에 사는 잡것이 너무 많아서. 그러고도 아비고 어른이라고, 어깨 위에 근엄을 올려놓고 살고 있으니. 거울에 비친 가식을 목격할 때마다 숨고 싶어진다.

 

내 입은 더 이상 문이 아니다.

열기보다 닫는 게 좋은 문은 문일 수 없다. 문을 닫아야 말도 닫힌다. 말 같지 않은 말은 닫는 게 맞다. 입이 문일 수 없는 나는 입안에 고이는 말조차 조심스럽다. 꽃인 동시에 칼인 게 말이라서, 향기를 뿜기도 하지만 피를 뿌리기도 한다. 미소도 찌푸림도, 애정도 미움도, 출발은 말이다. 당신은 어떤가. 나는 내 입에 고이는 말을 붙들기에도 벅차다. 이빨과 이빨 사이를 비집고 도망치려는 녀석들을 잘끈 깨물어 삼키는 것만으로도 스물네 시간도 짧다.

세상의 주인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다. 주인 행세를 하는 건 말이다. 말은 사람을 넘어뜨리고 사람 아닌 것을 세운다. 나 역시 그런 적 있다. 세워주려고 뱉은 말이 되레 무릎을 꿇리고, 위로랍시고 뱉은 말이 상처가 되어 되돌아왔다. 뱉어버린 말이 과거라면 아직 뱉지 않은 말은 미래일 뿐이다. 해와 달은 기울어도 말은 기울지 않는다. 세상의 주인은 말이다. 나와 당신의 주인 역시 그렇다. 싫든 좋든 마주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나는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입을 헹군다. 그럼에도 끝내 삼키지 못한 말 부스러기가 입속을 맴돈다.

고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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