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탄생 역사적 상징, ‘8·10 성남 항쟁’... 해방 이후 최초 대규모 도시빈민 투쟁

2026.08.10 14:38:08 8면

성남시, ‘8·10 성남 항쟁’ 55주년 기념행사 개최
1971년 강제로 이주된 주민 5만여 명의 생존권 투쟁
기록영상 상영 등 항쟁의 역사, 성남 정체성 되새겨

 

성남시 역사의 싱징 ‘8·10 성남(광주대단지) 항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행사가 마련돼 눈길을 모았다.

 

8·10 성남 항쟁은 지난 1971년 서울시에서 밀려나 수정구 일원 등으로 강제 이주된 주민 5만여 명이 정부를 상대로 한 벌인 생존권 투쟁의 역사다.

 

성남시는 10일 오전 시청 로비에서 ‘8·10 성남(광주대단지) 항쟁’ 55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기념식은 성남시 역사의 출발점이 된 1971년 8·10 항쟁의 의미를 되짚고, 성남의 정체성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8·10 성남(광주대단지) 항쟁’은 1971년 8월 10일 서울시의 무허가 주택 철거 정책으로 경기 광주군 중부면 일대, 현재의 성남시 수정구와 중원구 지역으로 강제 이주한 주민 5만여 명이 최소한의 생계 수단 마련을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벌인 생존권 투쟁이다.

 

1960년대 후반 서울시는 판자촌과 무허가 주택 정비 명분으로 주민들을 서울 외곽 광주대단지로 대거 이주시키면서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이주 지역에는 주택이나 도로, 상하수도, 전기 등 기반시설이 충분치 않았고 주민들은 일자리와 생계수단을 잃은 채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이에 당국은 주민들에게 토지를 싼값에 공급하겠다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분양가격과 세금 납부를 요구하면서 반발을 불러왔다.

 

이는 곧바로 항쟁의 기폭제로 작용하면서 수 만명의 주민이 집결해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일부 공공기관과 차량이 파손되는 등 충돌을 빚었다. 그 과정에서 주민과 경찰 등 100여명이 다쳤고 주민 20여명이 구속되는 사건으로 비화됐다.

 

전문가들은 이 항쟁이 단순 폭동이기 보다 무계획적인 도시개발과 강제 이주에 맞선 도시 빈민들의 생권권 투쟁으로 규정 짓고 한국 현대사에서 해방 이후 최초 대규모 도시빈민 투쟁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항쟁은 1973년 7월 1일 성남시 승격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그동안 시와 성남문화원은 8·10 항쟁을 역사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학술회 개최, 증언 자료 수집, 자료집 발간 등을 추진해 왔다. 시는 2024년 12월 16일 조례 개정을 통해 기존 ‘광주대단지 사건’ 명칭을 ‘8·10 성남(광주대단지) 항쟁’으로 변경했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성남시는 광주대단지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연대와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첨단산업과 혁신의 중심도시로 성장해 왔다”며 “앞으로 이러한 역사적 토대 위에서 대한민국의 기준이 되는 도시로 도약해 성남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이양범 기자 ]

이양범 ybl0516@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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