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
입구에 들어서자 22개의 흉상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 증언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생전 모습을 본뜬 흉상이다.
흉상마다 꽃 모양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이 직접 만들어 걸어놓은 것이다. 맨 앞에는 김학순 할머니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흉상의 주인공들은 더 이상 이곳에 없다.
지난 3월 28일 강일출 할머니가 향년 98세로 별세했다. 강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나눔의 집에서 돌봄을 받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8월 14일)을 하루 앞두고 찾은 나눔의 집에는 할머니들의 목소리 대신 그들이 남긴 흔적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주인 잃은 생활관…수요시위 오가던 승합차만 그대로
흉상을 지나 생활관으로 향했다.
할머니들이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생활했던 공간이다. 찾아오는 손님을 맞고 수요시위에 나서기 위해 집을 나섰던 곳이기도 하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강 할머니가 지난해 2월 건강 악화로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 생활관도 사실상 역할을 다했다. 이후 수개월째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으로 남았다.
생활관 옆에는 오래된 흰색 승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차량번호 ‘경기77나2826’. 현대자동차 그레이스다.
할머니들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9년 동안 이 차를 타고 서울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에 참석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기 위해 나눔의 집과 서울을 오갔던 발이었다.
운행을 멈춘 지 14년. 낡은 승합차는 여전히 생활관 옆에 서 있었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들이 오갔던 길의 흔적은 그대로였다.
발걸음을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으로 옮겼다.
전시관에는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도 유품이 돼 진열장 안에 놓였다. 할머니들의 삶과 증언은 이제 기록과 전시물로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방명록 한쪽에는 이들을 기억하려는 방문객들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나눔의 집을 찾아온 사람들을 직접 맞았던 이들. 수요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나섰던 이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역사적 증인을 자처했던 이들.
이제 그 자리를 기록이 대신하고 있었다.
◇ “진정성 있는 사죄 받아야 눈 감는다”
할머니들이 떠난 나눔의 집에는 그들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10년 넘게 할머니들을 돌본 김금례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강 할머니가 나눔의 집에서 보낸 마지막 시간부터 요양병원에서 눈을 감는 순간까지 곁을 지켰다.
강 할머니는 지난해 2월 건강이 악화돼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김 씨도 함께 생활관을 떠나 병원으로 향했다.
김 씨의 기억 속에는 강 할머니가 생전 반복했던 말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일본에 진정성 있는 사죄를 받아야 눈을 감는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평소 정이 많았던 강 할머니였지만 생의 마지막까지 전쟁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김 씨는 “세상을 떠나시기 얼마 전에는 전쟁 당시의 트라우마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괴로워하시기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할머니들을 모시는 동안 누구보다 행복했고 마지막까지 깨끗하게 모실 수 있어 보람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남은 바람은 하나다.
“여태껏 해온 게 허사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국민들이 계속 관심을 갖고 잊지 않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 240명 중 단 5명…‘증언 이후’를 준비해야 할 시간
피해 당사자가 없는 나눔의 집은 이제 새로운 역할을 준비하고 있다.
박찬돈 나눔의 집 사무국장은 앞으로 역사교육과 추모, 피해자 명예회복에 무게를 두겠다고 설명했다.
박 사무국장은 “생존자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나눔의 집은 올바른 역사교육과 추모, 명예회복 사업을 지속해야 한다”며 “민간단체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 유가족들과 연대해 추모 사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시간은 많지 않다.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상에 처음 공개적으로 증언한 지 35년이 흘렀다.
당시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은 역사의 침묵을 깼다. 이후 많은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이제 그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끝을 향하고 있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전국에 5명뿐이다. 평균 연령은 만 95.8세다. 5명 가운데 3명은 96세 이상이다. 경기도와 대구·경북·경남 등에도 생존자가 각각 1명만 남아 있다.
피해자의 직접 증언에 의존해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다시 나눔의 집 입구로 나오자 22개의 흉상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활관의 문은 닫혔다. 수요시위장을 오가던 승합차도 멈췄다. 할머니들의 물건은 유품이 됐고, 삶의 기억은 역사관의 기록으로 남았다.
나눔의 집에서 피해자의 일상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의 증언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가다.
[ 경기신문 = 김해일 수습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