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시즌 타율 4할을 넘어선 백인천 전 감독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백 전 감독은 이날 오전 6시 41분 충남 천안 단국대학교병원에서 뇌출혈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고인은 전날 오전 6시쯤 천안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구급차를 통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혈압과 맥박을 회복했지만 위중한 상태가 계속되면서 평소 정기적으로 진료받던 단국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이어갔으나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다.
백 전 감독은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 무대를 오가며 23년간 선수로 활약한 한국 야구의 대표적인 타자다.
특히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MBC 청룡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뛰며 타율 0.412를 기록했다. 출범 이후 지금까지 누구도 넘지 못한 KBO리그 유일의 ‘4할 타율’ 기록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업적을 기려 장례를 역대 두 번째 ‘KBO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빈소는 천안 단국대병원에 마련되며 발인은 오는 17일 오전이다.
1942년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뒤 경동중과 경동고에서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야구와 함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도 활동할 만큼 뛰어난 운동 능력을 갖췄으며, 강한 하체와 빼어난 타격 능력을 바탕으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포수였던 백 전 감독은 1961년 실업야구 농협에 입단한 뒤 이듬해 일본 무대로 진출했다. 자유계약으로 일본프로야구 닛폰햄 파이터스의 전신인 도에이 플라이어스에서 뛰며 일본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다이헤이요 라이언스(현 세이부 라이언스), 롯데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머린스), 긴테쓰 버펄로스 등을 거치며 1981년까지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975년에는 다이헤이요 소속으로 타율 0.319를 기록하며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오르기도 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을 계기로 국내로 돌아온 백 전 감독은 MBC 청룡에 합류했고, 이듬해부터 1984년까지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한일 양국에서 이어온 23년간의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했다. 1985년 청보 핀토스 타격 인스트럭터를 시작으로 지도자 경력을 쌓고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해 새롭게 출범한 LG 트윈스의 초대 감독을 맡았다.
당시 ‘혼(魂)의 야구’를 내세운 백 전 감독은 LG를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끌며 창단 첫해 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LG를 비롯해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사령탑에 이어 삼성과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등에서는 타격 인스트럭터로 후배 선수들을 지도했다.
1997년 삼성 감독 재임 당시에는 삼성 타자들의 압축 배트 사용 의혹을 제기한 천보성 당시 LG 감독과 이른바 ‘부정 배트 논쟁’을 벌이며 야구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일본 프로야구 타격왕과 KBO리그 유일의 4할 타자, 그리고 LG의 창단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이라는 굵직한 기록을 남긴 백 전 감독은 한국 야구사의 한 페이지를 남기고 영면했다.
[ 경기신문 = 김태호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