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1970년대 영화 속에 트럼프 시대에 대한 해법이 있다면

2026.08.17 15:45:19

‘무너진 세계: 1975’ - 감독 모건 네빌

 

지난해인 2025년 말에 공개됐으나 다음 달 9월에 열릴 에미상의 주요 수상 후보작으로 올라 다시 관심을 끌고 있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무너진 세계: 1975’는 분명 수상이 유력시되는 작품이고 미국 자국민들은 대단히 촉각을 세우겠지만 우리와 같은 해외 관객(시청자)들에겐 다소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고 또 설명하려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의 영화, 특히 1975년 영화들이 당시 혼란스러운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을 반영하고 극복하게 했다는 것인지 반대로 그 같은 시대가 오묘하게도 명품의 영화들을 만들게 했다는 것인지 다소 헷갈리게 한다. 두 가지 측면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 것 맞지만 다큐 구성의 초점이 자꾸 왔다 갔다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 다큐가 전하는 이야기를 잘 따라가다 보면 1970년대의 미국이 어떤 길을 지나왔고 그 역사가 할리우드 영화 역사와 더 나아가 세계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의 한국, 그때의 우리는 어땠는가를 반추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역사는 무엇이고 영화는 무엇이며 우리 자신은 무엇인지 까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무너진 세계: 1975’는 역사 다큐멘터리이자 성찰의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즐기기 위해서는 70년대에 나온 영화들, TV 시리즈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게 좋다. 이른바 ‘뉴 할리우드’ 시절의 영화들이다. 예를 들면 1974년 작인 ‘차이나타운’부터 1975년 영화들이었던 ‘뜨거운 오후(도그 데이 애프터 눈)’ ‘내쉬빌’ ‘나이트 무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죠스’ 등과 1976년 작인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그리고 ‘택시 드라이버’ 정도는 알아야 하되 단 한 컷이 스쳐 지나갈 때도 알아볼 수 있으면 좋다. 더불어, 그리고 이게 중요한데, 다큐에 나와서 당시를 회고하는 수많은 인터뷰이들도 낯이 익으면 좋다. 올리버 스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등이 나오고 뜻밖에도 배우 조시 브롤린이 자주 나와 70년대 영화에 대해 논평한다. 피터 바트 같은 평론가 겸 제작자, 피터 비스킨드 같은 평론가도 당연히 나온다. 인터뷰 대상자 중 한 명인 조안 튜크스베리(로버트 알트만 영화 ‘내쉬빌’의 각본가, 시나리오 작가)는 말한다. “영화는 사람들을 편히 자게 할 수도 있고 깨어나게 할 수도 있어요. 제가 관심이 있는 건 깨어나게 하는 부분이에요.” 영화의 사명에 대해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말도 없다. 영화 전체의 화자이자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조디 포스터(가 캐스팅된 데는 그녀의 작품 ‘택시 드라이버’가 이 다큐의 주요 꼭짓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자 최고 권력자였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존 F. 케네디에게 한 말을 전한다. “보이지 않는 강이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면 강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다리를 만드시오.” 영화가 주는 현실 착시와 판타지의 유해성을 이처럼 교묘하게 전달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무너진 세계: 1975’는 단순하지만 복잡하고 쉬운 얘기인 척 수많은 고담준론을 전하고 있는 영화이다. 이 작품을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1970년대의 미국사와 세계사에 대해 통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는 닉슨 전 미 대통령이 저지른 1974년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미국사의 결절점이었다고 지목한다. 그리고 그 얘기를 시드니 루멧 감독이 만든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란 영화에 중첩한다. 영화에서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로 분한 로버트 레드포드와 더스틴 호프만은 당시 사건을 그대로 재현한다. 닉슨이 하야한 후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 컨테이너 화물선인 마야게즈호가 베트남 공산군(당시부터는 정부군)에 의해 나포되는 위기를 겪는다. 포드는 마야게즈호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에 성공해 인기를 얻는다. 그러나 곧바로 전직 대통령 닉슨에 대한 모든 (정치적 사법적) 범죄를 사면함으로써 공분을 산다. 동시에 마야게즈호 구출 작전이 허위에 가득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다큐 ‘무너진 세계: 1975’는 이를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차이나타운’으로 대비시킨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 에블린(페이 더너웨이)이 형사가 쏜 총에 맞아 죽자 탐정 제이크(잭 니콜슨)는 흥분과 패닉상태에 빠지는데 그런 그를 현장 밖으로 밀쳐내면서 한 형사는 말한다. “그만둬. 여기는 차이나타운이야.” 모든 부조리가 판치는 곳, 그 누구도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게 할 수 없는 곳, 그곳은 바로 차이나타운이고 1970년대의 미국 그 자체였음을 설명한다. 영화 ‘차이나타운’을 잘 알고 있는 영화광들은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이다. 이 다큐가 어쩔 수 없는, 영화마니아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다큐 중간에 ‘샤프트’같은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작품들을 언급하는 대목도 마찬가지이다. 70년대의 시대상이 어떻게 흑백 인종 문제에 대한 영화적 자각을 불러일으켰는지를 보여준다. 이때 나오는 흑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바로 리처드 프라이어이다. 리처드 프라이어는 흑인영화, 비(非) 백인 영화, 흑인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 산업을 이끈 인물이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초기작으로 역시 1974년 영화였던 ‘앨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를 통해서는 당시의 할리우드가 어떻게 여성주의로 연결돼 가는지를 보여준다. 이제는 원로가 된 엘런 버스틴과의 인터뷰가 이어지고 당시 미 의회에서 격렬한 논쟁이 됐던 ERA 법안(Equal Rights Amendment 평등권 수정안)에 대해 언급한다. 세상이 바뀌고 있을 때 여성의 주체적 성평등 권한에 대해 할리우드가 영화로 답하기 시작했고 그게 다시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쳤음을 설명한다. 영화와 역사가 어떻게 교호하는지, 그럴 때 흐루쇼프의 얘기처럼 보이지 않는 다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 조안 튜크스베리의 말처럼 깨어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1970년대의 혼란이 지금의 미국 사회에까지 연결돼 있다. 이 다큐는 그 점을 분명히 한다. 닉슨의 도청 사건, 그리고 이후 로널드 레이건의 등장은 미국이라는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전조이며 그 영향으로 2천년대의 미국도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얘기하려 한다. 이 논리는 거꾸로 2천년대인 현재, 곧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재건하기 위해서는 1970년대의 미국을 정확하고 면밀하게 알아낼 필요가 있고 그러려면 당시에 나온 영화를 철저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는 늘, 과거가 살리기도 하고 과거의 영화가 살리기도 한다. 과거의 역사를 배우는 데 있어 영화만 한 것이 없다는 얘기이다. 역사적 정점이었던 시대의 영화들을 통해 현실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혼란을 넘어 거의 아수라장에 가까운 지금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언제라도 트래비스 같은 인물(‘택시 드라이버’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 사회적 불만을 정치적 암살로 해결하려 한다)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탐사 저널리스트 시모어 허시가 폭로한 CIA 민간인 사찰 문제는 코폴라 감독의 ‘컨버세이션’(1974)이나 시드니 폴락이 만든 ‘코드 네임 콘돌(원제 콘돌의 3일)’(1975)로 재현됐다는 것도 이 다큐를 통해 알게 되는 사실이다. 허시의 진실탐사 보도, 그리고 이어지는 영화들이 결국 정부가 만든 ‘처치 위원회’를 대중으로 예의 주시하게 만든 셈이다. ‘대중을 깨어 있게 하는’ 영화의 전형들이다.

 

 

‘무너진 세계: 1975’는 유명 다큐멘터리스트인 모건 네빌의 작품이다. 그가 만든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은 2014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 같은 해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음악영화상을 수상했다. 다큐멘터리가 재미있을 수 있음을 넘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을 표방하는 작가주의 다큐멘터리스트이다. 한 가지 더 유의해서 봐야 할 점이 이런 다큐멘터리는 사실 법률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모든 푸티지의 저작권과 관련 인물들의 초상권을 법적으로 다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제작비가 많이 드는 다큐멘터리이다. 법적 분쟁을 사전에 정리하면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전쟁’일 수 있다. ‘무너진 세계: 1975’는 그 모든 난제를 뚫고 만든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의 선진화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현실에서는 다소 언감생심의 영화이다. 다큐멘터리 작업이 고도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산업과 문화가 고도화로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우리로서는 ‘무너진 세계: 1975’같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미국 할리우드의 현실이 부러운 이유이다. 이 영화는 에미상에서 상을 못 탈 수도 있다. 요즘 세대에게는 다소 ‘난독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이라는 특수한 나라의, 특수한 얘기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릇, 특수가 보편을 만든다. 에미상이 이 작품에 손을 들어 준다면 그 같은 보편성, 일반화, 동일화의 이슈를 잘 해결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의 일독을 권한다. 이 영화는 보는 것을 넘어 읽는 영화이다.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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