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에서 가정폭력 남편이 법원의 접근금지 등 임시보호명령에도 불구하고 이혼소송 중인 아내를 살해한 사건은 허탈하기 짝이 없다. 경찰의 무능한 대응이 연일 국민 원성 차트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사례가 등장한 셈이다. 생명을 위협당하는 국민은 도대체 어떤 자구책을 어디에서 구해야 하나. 법원의 보호명령에도 덧없이 죽어가야 하는 약자들의 비극이 더 이상 방치돼선 안 된다. 가해자 감시 체제 강화 등 확실한 방지책이 시급하다.
지난 1일 아침 광주시의 한 다세대주택 외부 계단에서 30대 여성이 이혼소송 중이던 남편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범인은 아내의 새 거처를 파악한 뒤 다섯 살 딸이 보는 앞에서 흉기를 휘둘렀다. 달아났던 범인은 범행 4시간여 만에 수원 지역 모텔에서 붙잡혔다.
피해자는 피격 직후 가까스로 스마트워치로 경찰에 신고했으나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사망했다. 가정폭력 피해 신고 4차례, 경찰 수사와 검찰 송치, 법원의 임시보호명령, 주거지 맞춤형 순찰과 112 피해자 번호 등록 등 안전 조치를 포함해 보호 장치가 여러 겹으로 작동했음에도 살인을 막지는 못했다. 범행 전 위험 신호가 반복됐다는 점에서 또 한 번 경찰의 피해자 보호 조치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가해자의 자발적인 준수에 크게 의존하는 현행 접근금지 명령 제도와 범행이 시작된 뒤의 신고 수단에 그치는 스마트워치의 효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광주 사건의 경우, 4차례 신고가 하나의 위험 흐름으로 관리됐는지, 관할이 바뀐 뒤 보호 정보가 제대로 인계됐는지, 접근금지 이행 여부를 누가 점검했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
이번 사건의 이면에는 구멍 뚫린 피해자 보호 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피해 여성은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남편을 상대로 4차례나 폭행·협박 피해 신고를 한 뒤 매번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경찰은 흉기로 협박한 남편을 특수협박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해 구속영장까지 신청했으나 영장은 기각됐다.
안타까운 것은 지난달 이혼소송 서류가 송달되는 과정에서 ‘주소 비공개 요청’이 누락돼 범인에게 새 주소가 그대로 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경찰은 지난달 11일 피해자에게 전화로 안전을 확인하던 중 “서류 송달 과정에서 남편에게 주소가 노출된 것 같다”는 내용의 상담을 접수했다.
소송 절차가 가해자의 보복 범죄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3년 6월 경기 김포에서는 허위 민사소송으로 옛 연인의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은 뒤 협박한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해 용인에서도 허위 보험금 청구소송으로 주소를 알아낸 뒤 성범죄 신고자를 살해한 참극이 벌어졌다. 소송 과정에서 주소 공개를 원하는 경우에만 소장에 기재하거나, 주소 공개 동의 여부를 사전에 적극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스마트워치에 의존하는 현행 피해자 보호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도 문제다. 피해자가 위험에 처한 뒤 버튼을 누르면 경찰이 출동하는 방식이어서 가해자가 계획적으로 벌이는 순간적 공격을 사전에 막기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7월 성남 스토킹 피살 사건과 지난해 4월 시흥에서 일어난 전 남편의 30대 여성 피살 사건 당시에도 피해자들은 모두 스마트워치를 갖고 있었고, 경찰이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으나 비극을 막지 못했다.
이처럼 피해자 동선만 제약하는 ‘사후 대응식’ 보호 체계가 관계성 범죄 대응에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재차 입증되면서, 가해자에 대한 선제 감시 체계로의 전환과 소송 절차 과정의 개인정보 보호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원의 까다로운 결정 절차를 개선해 고위험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해 접근 자체를 차단하는 ‘가해자 중심 감시 체계’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허무하게 스러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이젠 바꿔야 한다. 길을 몰라서 못 가는 어리석음보다 알고도 가지 않는 허물이 백배 더 고약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