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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중도층의 전성시대


 

3-3-4. 이는 축구 포메이션 중 하나지만 선거 공학 기본 틀이기도 하다. 3은 여와 야를 각각 지지하는 이른바 진보와 보수 세력이고 나머지 4는 무당파 세력이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집토끼 격인 자신의 지지 세력을 우선 묶어둬야 한다. 그런 다음 자기정체성이 불명확한 무당파층을 끌어들여야 승리할 수 있다.

 

무당파층의 다른 이름은 중도층이다. 진보와 보수의 중간에 끼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중도는 부정적 뉘앙스를 풍긴다. 실제 중도는 많은 의심을 샀고 푸대접을 받아왔다. 격랑의 현대사에서 기회주의적 정치 세력으로 치부된 것이다. 진보 쪽에서 보면 서슬 퍼런 시대에 중도는 보수보다 더 위험한 세력이었다. 정체가 불분명한 것은 섬뜩한 공포이기 때문이다. 보수 쪽에서도 중도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진보세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중도층에게 봄날이 찾아왔다. 진보와 보수 세력 모두에게 피아 구별이 어려웠던 지난 대선에서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대선주자들은 앞다투어 중도층 구미에 맞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말끝마다 중도를 외쳤다. 민주당 후보는 진보적 어젠다를 외치지 않았고, 국힘당 후보는 보수적 어젠다를 외치지 않았다. 그야말로 중도층이 케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중도층이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대선 당시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현실성과 도덕성, 보편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중도층은 현실성 없는 정책이나 구호에 냉담하게 반응했다. 각종 선심성 공약을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맥락에서 바라 본 것이다. 도덕성도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는데 도덕군자를 원하기보다는 현실에서 용인될 수 있는가를 잣대로 삼았다. 일테면 사적인 도덕성보다 법인카드를 통한 유용이나 직권남용 등 공적인 도덕성에 엄격함을 보인 것이다.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진영주의 등 극단을 외면하는 보편성도 중도층의 특징이었다.

 

중도층은 사안에 따라 진보적이기도 하고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상식과 합리에 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한마디로 중도층은 실사구시적인 것이다. 중도층은 계급 집단이 아니기에 정체성을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현 단계 특정 정치의식을 지닌 부류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 중도층이 실사구시적이라면 망국적 병폐인 진영주의가 들어설 자리는 비좁지 않을까?

 

지난 대선 당시 진보를 자처했던 시민들이 '탈 진보 중도'를 선언했는가하면 보수를 자처했던 시민들도 '탈 보수 중도'를 선언했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인데도 언론은 물론 기득권 정치권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익을 위협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식의 새로운 이 흐름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치적 감수성이 있는 시민이라면 얼음장 밑에서 흐르고 있는 변화에 귀 기울이고 있지 않을까?

 

이데올로기는 낡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하지만 낡은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이다. 역사는 이를 보여준다. 작금 한국 사회의 낡은 이데올로기를 실사구시로 무장한 중도층이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