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죽어 가고 있다. 부도덕한 강자 편에 서서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는 인간들이 판을 친다. 이 부패한 세상에 큰 좌절감을 느끼는 약자가 많다. 그들에게 “삶은 살아볼 만한거야. 절대 포기하지마”라고 용기를 주는 이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교황 레오 14세다.
야만의 전쟁인 중동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전쟁을 비판하기보다 전쟁 물자를 팔고 방산시장 세계 선두 반열에 올랐다고 노래한다. 역겨운 ‘트럼프 쇼’에 주식시장은 춤을 추고 어떤 이들은 코스피 6000 시대를 외치며 기뻐 어쩔 줄 모른다. 자기의 안위가 제일인 세상이다. 물론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자본주의 시대, 돈이 없으면 어찌 살랴! 하지만 빵만으로 살 수 있는가. 휴머니즘이 사라진다면 그 사회는 사상누각이다.
이 위기 앞에 교황 레오 14세는 투쟁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의 부당한 이란전쟁과 이민정책을 질타할 뿐만 아니라 그에 걸 맞는 행동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1일 그는 한 불법 이민자 출신 사제를 웨스트버지니아 주 휠링-찰스턴 교구의 주교로 버젓이 임명했다. 트럼프가 ICE(이민세관단속국) 요원을 동원해 이민자 추방 조치를 내린 상황에서 나온 액션이라 용맹스럽기 그지없다.
ICE 요원들은 지난 2월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등에서 대규모 이민자 단속을 실시하다 사상자를 냈다. 교황은 트럼프의 이 같은 이민자 악마화를 ‘극도로 무례한 짓’으로 규정하고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대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인사는 미국 출신 교황이 모국의 과격한 이민자 정책에 맞서 단행한 것이라 상징적 의미가 크다.
물론 휠링-찰스턴 교구의 새 주교인 에벨리오 멘히바르 아야라는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그의 인생은 가히 입지전적이다. 1970년 8월 14일 엘살바도르 샬라테낭고의 한 가난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청소년기 고국의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탈출하려다 세 번 붙잡혔다. 멕시코에서 처음 체포됐을 때 그는 풀려나기 위해 뇌물을 주고 티후아나를 통해 국경을 넘기도 했다. 미국 땅을 그가 최종 밟은 건 1990년 1월, 형과 함께 자동차 트렁크에 숨어서였다.
갈아입을 옷 몇 벌만 챙겨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이 19세의 청년은 리셉션 직원, 건설 노동자, 관리인, 페인트공, 청소년 지도자 등 온갖 잡일을 했다. 이때 밤에는 영어를 공부하면서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을 준비했다.
인고의 세월 끝에 그는 1995년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의 세인트존비안니 신학교에 입학해 4년간 수학하고 철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로마로 건너가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04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멘히바르 신부는 2024년 조지타운 대학교로부터 인문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목 활동 내내 그는 노동자들을 적극 지지했고 이민자들을 위한 사회 정의를 계속해서 옹호해 왔다.
유유상종인 멘히바르 주교와 교황 레오 14세. 이들은 인종과 정의를 위해 불의와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 그 덕에 약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용기 내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양쪽 모두를 위해 힘찬 브라보(Bravo: 환호)를 외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