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발발한 이란발 전쟁의 포화는 단순히 특정 지역의 영토 분쟁을 넘어 지구촌 전체에 거대한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자국의 안전 보장과 패권이라는 명분 아래 포탄이 쏟아지는 사이, 그 폭력의 밑바닥에서 피를 흘리는 이들은 언제나 전쟁과 상관없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거시적인 역학관계와 화려한 군사 전략에 가려진 이 비극의 본질은 결국 무고한 ‘사람’의 고통이다.
얄팍한 자국 우선주의와 증오의 정치가 지배하는 시대에, 인류가 수천 년간 쌓아온 '공동체'와 '인류애'라는 가치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상대를 절멸시키겠다는 비정함 속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회복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시선을 아프리카 대륙의 오래된 철학이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남긴 위대한 유산으로 돌려본다. 반투어에 뿌리를 둔 아프리카의 전통 철학, 바로 ‘우분투(UBUNTU)’다. 흔히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 혹은 “우리가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로 번역되는 이 짧은 말은, 인간의 존엄성이 혼자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와 연결성 속에서만 완성된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
우분투를 설명할 때 가장 널리 인용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던 한 인류학자가 나무 옆에 과일 바구니를 두고 "가장 먼저 뛰어가는 아이에게 전부 주겠다"며 달리기를 제안했다. 하지만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 아이들은 경쟁하는 대신, 일제히 서로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 과일을 똑같이 나누어 먹었다. 의아해하는 인류학자에게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혼자 먹으면 다른 아이들이 모두 슬픈데, 어떻게 먹으면서 행복할 수 있겠어요?” 타인의 불행 위에 세워진 행복은 가짜이며, 서로 연결되어 함께 나아갈 때 비로소 공존할 수 있다는 맑은 지혜다.
이 우분투 정신을 만델라 대통령은 집권 후 국가 시스템으로 승화시켰다. 과거 백인 정권의 잔혹한 학살과 흑인들의 분노로 언제 내전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가해자들이 대중 앞에서 범죄를 솔직하게 고백하면 처벌 대신 사면을 해주는 파격적인 제도였다. 평생을 차별받고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도 처벌의 칼날 대신 눈물로 가해자들을 품어주며 용서와 화해를 택했다.
이 우분투 철학이 오늘날 포탄이 뒤엉킨 글로벌 위기 속에 던지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전쟁으로 신음하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우리만의 안락함과 번영을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축이 무너지면 그 충격파는 고스란히 공급망의 붕괴와 경제적 위기로 우리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순간 나 자신 역시 파괴된다는 것이 바로 우분투의 경고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고도의 압축 성장을 거치며 지나친 각자 도생과 경쟁 논리에 익숙해져 왔다. 일등 지상주의에 갇혀,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지혜를 잊어버렸다. 그러나 지금처럼 지구촌 전체가 흔들리는 시대에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우분투 정신이 인류의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고립과 소외를 막는 사회적 안전망을 복원하고, 국제적으로는 제3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글로벌 시민 의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의 손을 잡는 '우분투'의 주체가 될 때, 인류는 비로소 참된 화합과 평화의 길로 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