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마을 사람들은 굿판에 둘러앉아 서로의 안녕을 빌었다. 풍년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고, 함께 살아갈 내일을 염원하던 공동체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이어져 온 ‘경기도도당굿’이 오늘날 무대 위에서 새로운 언어를 입는다.
지난 26일 화려한 막을 올린 경기아트센터 G-ARTS가 본격 출범하며 도내 공연예술의 새로운 무대를 열었다.
이달 말까지 이어지는 ‘G-ARTS FESTIVAL’은 도 최초의 공연예술 선순환 플랫폼이다. 우수 공연예술 작품을 발굴하고 공연장과 예술단체를 연결하는 것은 물론, 국내외 공연예술 관계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작품의 확산과 진출까지 지원한다.
그 중심에는 경기도무용단이 있다.
경기도무용단은 신작 ‘귀귀내력’을 통해 경기도도당굿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조현산 연출과 경민선 작가는 오래된 공동체의 기억을 오늘의 무대로 옮기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전통의 얼굴을 선보인다.
지난 29일 오후 찾은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무대 뒤에서는 공연을 앞둔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졌고, 분장실에서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웃음소리가 긴장감을 조금씩 풀어내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서 조현산 연출과 경민선 작가는 마지막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평소 ‘굿’에 관심이 많았다는 경 작가는 김경숙 경기도무용단 예술감독과의 만남을 계기로 하나의 장면을 떠올렸다. 전통 굿을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낸 무용극. 그 시작은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경기도도당굿’이었다.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처럼 우리 신화와 전통을 새롭게 해석한 콘텐츠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경기도도당굿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우리 모두 잘 살아보자’는 마음을 나누던 공동체 문화입니다. 그런 풍경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잊혀가는 우리 문화를 지금의 감각으로 다시 불러내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색감과 오브제들을 더해 전통을 조금 더 친근하게 만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조 연출은 이야기보다 먼저 ‘이미지’가 관객의 마음에 닿기를 바랐다.
“원래 이야기를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이번 작품도 굿상을 차리고 무구들이 움직이는 장면 하나하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집중했어요. 무용과 소리, 연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의상과 소품까지 세심하게 고민했습니다.”
‘귀귀내력’은 대사와 몸짓이 어우러져 말을 건네는 작품이다. 두 명의 장승이 극을 이끌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수원 영동시장 ‘거북산당’은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실제 공간이다.
“경기도도당굿은 세습무들이 이어온 굿입니다. 쉽게 말하면 무당 집안에서 대를 이어 전승해온 굿이죠. 다른 지역은 어머니 계보가 많은 반면, 도는 아버지 계보로 이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거북산당을 배경으로 한 것도 그런 지역성을 담고 싶었어요. 거북산당굿은 화재를 막기 위한 굿으로 불에서 시작해 물로 끝나는 이야기를 품고 있어요. 물 수(水) 자를 쓰는 수원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고, 영동시장의 역사까지 함께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작품 속 ‘도당할아버지’는 부천 장말도당굿의 특징을 일부 녹여낸 설정입니다.”
두 사람은 작품이 거창한 의미보다 먼저 ‘재미있는 공연’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무용은 어렵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이번 작품만큼은 누구나 편하게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굿’이라는 문화를 어렵게 바라보기보다 우리 동네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만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조 연출 역시 전통 연희가 가진 ‘함께하는 힘’을 작품에 담아냈다.
“전통 연희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습니다. 이번 공연도 객석에서부터 시작돼요. 굿이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인 것처럼 관객들도 공연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와 함께 호흡하셨으면 합니다.”
G-ARTS가 도를 하나의 무대로 잇는 새로운 출발이라면, ‘귀귀내력’은 그 시작을 축복하는 공연이다. 작품은 경기도 31개 시·군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을 전통 굿의 언어로 풀어낸다.
“종교를 이야기하려는 작품은 아니에요. 굿을 하나의 전통문화이자 예술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품 속에는 수원의 거북산당을 비롯해 경기도 여러 지역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경기도도당굿이라는 우리만의 문화를 더 많은 분들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판타지 장르지만 현실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전통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도 부담 없이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누군가는 굿을 오래된 의식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낯선 전통이라 말한다. 하지만 ‘귀귀내력’은 그 오래된 시간을 오늘의 이야기로 다시 들려준다. 서로의 안녕을 빌던 마음은 무대 위 춤이 되고, 소리가 되고, 한 편의 공연이 된다.
오는 4일과 5일, 경기도무용단이 펼쳐낼 ‘귀귀내력’은 관객들에게 오래된 전통이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조용히 건넬 예정이다.
[ 경기신문 = 서혜주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