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에서 활동하는 금속공예가 이철재씨(55)를 만난 것은 대신면 상구리 작업장이었다.
이 작가는 '메이드 노리터'란 이름으로 갤러리와 공방 카페점도 병행하고 있다. 앞치마 차림에 메모지를 든 그는 자신을 소개하며 뜻밖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제 이름이 '이철재'다"면서 "가운데는 쇠 철(鐵), 마지막은 실을 재(載)"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름을 풀면 '쇠에 무언가를 가득 싣는다'는 뜻이다”라며 웃어 보였다. "어쩌면 운명아닌가"라고 했다.
이씨는 “금속 위에 제 생각과 삶을 실어 세상에 남기라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농담처럼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한 예술가가 자신만의 길을 고집스럽게 만들어 온 캔버스의 여정처럼 비쳐졌다.
이 작가의 첫 직업은 공예가가 아니다. 그는 27년 동안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친 미술학원 강사였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보람 있었지만 늘 제 작품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성남시 분당에서의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10년 전 여주로 내려왔다. 그는 "남한강 풍경과 여주의 고요함이 제 감각을 깨웠다”며 “이곳으로 내려온 첫 2년은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여주는 단순한 작업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세계를 시작하게 만든 기회였던 셈이다.
작품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의 눈빛은 더욱 선명해졌다. 대학 시절 졸업작품에서 사용했던 한 기법이 오랜 시간이 지나 이곳에서 다시 떠올랐던 것. 그는 "나무판 위에 금속을 덧대고 동못으로 고정하는 방식이었는데 당시에는 정통 공예가 아니라는 이유로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여주에서 작업을 이어가며 그는 오래전 기억을 다시 꺼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금속 드로잉(Metal Drawing)'이다. 그는 "저에게 나무판은 캔버스다. 금속판을 못으로 하나하나 고정한 뒤 날카로운 도구로 선을 새긴다”며 “펜화처럼 세밀한 선을 쇠 위에 그리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자신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작품보다도 '분류'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낼 때 보면 항상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서 “그림인지 공예인지를 따진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강릉 신사임당미술대전에서 겪었던 일을 잊지 못한다. 접수 직원은 그의 작품을 보더니 회화 접수처를 안내했고, 다른 직원은 한국화 접수대로 데려가려 했다. 그가 '금속공예'라고 말하자 모두들 당황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내가 가는 길은 결국 나밖에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처음에는 낯설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입선을 시작으로 특선과 장려상, 은상을 차례로 받았고 마침내 지난해 전국 ‘세종한글디자인공모전’에서 최고상인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쇠처럼 단단하게 버틴 시간이 결국 작품을 증명해 줬다"고 활짝 웃었다.
이 작가는 후배들에게도 한마디 전했다. 그는 "세상은 늘 '전례가 없다'는 핑계를 들어 말하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과 최고 실력을 보일 수 있는 열정이 있다면 낯섦은 오히려 가장 큰 경쟁력이 된다”고 힘있게 말했다.
이 작가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경계선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새로운 길을 열고 걷는 사람만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경기신문 = 황의성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