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가 글을 읽고 요약하는 시대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손으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필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수원교육지원청은 이러한 흐름에 맞춰 전국 최초로 장애학생을 위한 필사 기반 인권교재 'WE:WRITE(위:라이트)'를 개발했다. 문학과 철학, 헌법 등 교육적 가치가 높은 글을 학생들이 직접 읽고 써 보며 자기결정권과 자기옹호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만든 장애학생 전용 교재다.
교재는 수원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가 직접 기획·집필하고, 느린학습자 교육 콘텐츠 전문 사회적기업 피치마켓이 쉬운 글 번안과 편집, 디자인을 맡아 공동 개발했다.
기존 장애학생 인권교육이 강의나 영상 시청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WE:WRITE는 학생이 직접 문장을 읽고 따라 쓰며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고 표현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인권을 '듣는 교육'에서 '읽고 쓰는 교육'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 손글씨의 힘…뇌 연구가 주목한 '필사'
수원교육지원청이 필사를 교육 방식으로 선택한 것에는 교육학적 근거도 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카린 하먼 제임스 교수 연구팀이 2012년 발표한 논문 'The Effects of Handwriting Experience on Functional Brain Development in Pre-Literate Children'에 따르면, 직접 글자를 써 본 취학 전 아동이 타이핑이나 단순 따라쓰기(Tracing)를 한 아동보다 글자를 인식할 때 읽기와 관련된 뇌 영역이 더 활발하게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손글씨 경험이 글자 인식과 관련된 신경 처리 과정에 영향을 미치며 읽기와 관련된 신경 체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수원교육지원청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교육적 배경으로 삼아 인권교육과 필사를 접목한 장애학생 전용 교재를 개발했다.
기획부터 발간까지는 8개월이 걸렸다. 지난해 11~12월 내부에서 사업 방향을 논의해 계획을 세우고, 올해 1월 피치마켓에 협업을 제안했다.
2~3월에는 수원교육지원청에서 원문을 선정하고 원고 초안을 집필했다. 4월에는 교재 구성안과 목차를 확정했으며, 5월 쉬운글 번안과 삽화 제작을 거친 뒤 6월 30일 세상에 나왔다.
수원교육지원청 관계자는 "기존 인권교육은 강의나 영상 시청 중심의 일회성 교육이였다. 장애학생 입장에서는 '듣는 교육'이었고, 끝난 뒤 학생에게 남는 것이 많지 않았다"며 "WE:WRITE는 그 방향을 바꾼 시도다. 학생이 한 문장씩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몸에 남는 교육이 된다"고 설명했다.
◇ 30일로 완주하는 인권교육
WE:WRITE는 단순한 필사 노트가 아니다. 학생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읽고 이해하며 표현할 수 있도록 설계한 30일 과정의 인권교육 프로그램이다.
교재는 △나를 키우는 시간(1~10일) △서로를 이어주는 마음(11~20일) △함께 지키는 약속(21~30일) 등 3단계로 구성됐다.
먼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배려와 공감을 익힌 뒤, 마지막에는 헌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했다.
수록된 글은 윤동주, 양사언, 이순신, 세종대왕, 소크라테스 등 문학과 철학 작품 20편, 헌법과 유엔아동권리협약,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법령 10편이다.
교재는 원문을 그대로 싣지 않았다. 읽기와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원문을 쉬운 글로 다시 풀어 쓰고, 원문과 쉬운 글, 활동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학생들은 '먼저 생각해 보기' 질문으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린 뒤 문장을 천천히 읽고 직접 따라 쓰며, 색칠하기와 다른 그림 찾기, 숨은 단어 찾기 등 다양한 활동으로 내용을 익히게 된다.
쓰기 자체가 어려운 학생도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림 활동과 OX 문제, 점 잇기 등을 함께 담아 학생 수준에 맞는 방식으로 같은 주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교재는 30일 완주 과정으로 설계된 점도 특징이다.
학생들은 하루 분량을 마칠 때마다 '나만의 나무'에 열매를 하나씩 색칠하며 30일 동안 학습을 이어간다. 여기에 학교 방문 오리엔테이션과 완주 인증 프로그램까지 연계해 단순히 교재를 배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성취 경험을 제공하도록 설계했다.
수원교육지원청 관계자는 "교재를 나눠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학생들이 30일 동안 끝까지 완주하며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자기옹호 역량을 키우는 것이 목표"라며 "학생들이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표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학교 현장 첫 적용…효과 검증도 병행
수원교육지원청은 오는 19일부터 관내 초·중·고 9개교 9개 특수학급에 교재 100부를 배부하고 학교 방문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
2학기에는 학급별 필사 활동을 운영하고, 9~10월에는 유튜브 라이브 프로그램 '함께 쓰는 금요일'을 통해 여러 학교 학생들이 같은 시간 함께 필사하는 활동도 진행한다.
11월에는 20일 이상 필사를 완주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완주 인증도 실시할 예정이다.
교육지원청은 올해를 효과 검증의 첫해로 삼는다.
참여 학생을 대상으로 자아존중감과 자기옹호 역량, 공동체성 등을 사전·사후 설문으로 비교하고, 교사 대상 설문도 함께 실시해 교재의 효과와 현장 활용성을 분석할 계획이다.
수원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장애학생 인권은 권리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학생이 자신의 권리를 읽고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권리가 된다"며 "WE:WRITE가 장애학생 인권교육도 문해력 중심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새로운 교육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는 발달장애 학생과 느린학습자를 위한 1차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며 "시각·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접근성 확장은 이번 운영 결과와 현장 수요를 바탕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경기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 경기신문 = 유창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