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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하늘 위, 사랑하는 사람의 별자리를 찾는다는 것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 – 감독 리들리 스콧

 
세계 영화계 역전의 노장이자 사라지지 않는 노병(1937년생, 89세)이지만 리들리 스콧의 이번 신작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은 좋은 점 세 가지를 찾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나쁜 점 세 가지는 쉽게 보인다. 그럼에도 애정을 버리기가 쉽지는 않은 데 그건 순전히 이 영화에 나오는 도그(dog), 재스퍼(벨지안 셰퍼드 종으로 마리노이즈라 부르는 개)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리들리 스콧도 다 예견한 일이겠지만, 주인공 힉(제이콥 엘로디)과 재스퍼가 같이 다니는 모습은 2007년에 나온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서 주인공 네빌(윌 스미스)과 그의 반려견 샘이 같이 다니는 것과 거의 흡사하다. 마치 베낀 것 같이 보일 정도이다. 재스퍼는 수컷이고 샘은 암컷이며 재스퍼는 샘과 달리 자기 주인과 경비행기 세스나를 자주 타고 다니며 로키산맥의 풍광(영화의 주요 공간인 덴버와 콜로라도)을 즐긴다는 점이 다르다. 문제는 리들리 스콧이 강아지 재스퍼를 너무 빨리 죽인다는 점이다. 그게 이 영화의 나쁜 점 중의 하나이다.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이 첫 번째로 좋은 점은 ‘그럭저럭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방점은 ‘그럭저럭’이 아니고 ‘재미가 있다’에 찍혀 있다. 그 점이 중요하다. 영화는 클리셰 투성이지만 못 참을 정도까지는 아니다. '아, 역시 감독의 나이가 많아도 한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이다. 세상은 무슨 바이러스로 멸망했는데 그 가운데 살아남았고 또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힉과 그가 어디론가(그랜드 정션)로 가다 만난 여인 시마(마거릿 퀄리)가 나누는 대화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시마가 말한다. “차를 타고 가다가 음악을 듣던 시절이 그리워” 그러자 힉은 대답한다. “나도. 나는 교통체증조차 그리워” 여기까지는 괜찮다. 힉은 시마에게 자신을 믿고 눈을 감으라고 하고 그런 그녀에게 80년대 워크맨 헤드폰을 끼워 준다. 낡아도 참 많이 낡은 장면이다.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은 이처럼 올드한 느낌의 장면이 많은 작품이다.
 
주인공 힉은 영화 중반까지 콜로라도주 그랜드정션에 희망을 건다. 거기에 생존자가 있고(해당 주파수로 뜸하게 무전이 닿는다) 그나마 정상적이며 다시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마와 시마 아버지인 팝스(가이 피어스)까지 끌고 그랜드정션의 구 공항 지역으로 간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기가 달린(앨리슨 제니)이란 여자가 지배하는 식인 집단의 거점 같은 곳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이 시퀀스를 의도적으로 난장판처럼 찍었다. (냉동고에 사람들을 토막 낸 사체들이 걸려 있는 등) 이 장면들도 이 영화의 나쁜 점 중 하나이며 다소 지나친 감이 있어서 원작을 쓴 피터 헬러로서는 그다지 좋아할 장면이 아닐 것이다. (원작자와 감독은 작품 윤색을 놓고 극단적으로 대립하곤 한다. 레이먼드 챈들러와 알프레드 히치콕이 1951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원작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각색 작업 과정에서 대립한 일은 할리우드의 유명한 역사다.)

 

 
그럼에도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의 가장 좋은 점(그리고 이게 두 번째인데)은 ‘거버넌스의 부재’다. 이 영화에는 정부, 사회 시스템이 깡그리 사라졌다. 그랜드정션의 군인들 혹은 용병들은 하나같이 사이비 집단의 일원 같은, 병적인 캐릭터로 그려져 있다. (사람을 먹는데 그렇지 않겠는가) 리들리 스콧은 인류 멸종의 위기 앞에서 기존의 사회 체제는 무용하고 무의미하다고 본다. 나이 많은 감독이라면 보통 보수적인 영웅 한 명쯤은 내세울 법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인물이 없다. 리들리 스콧이 지닌 무정부주의가 영화 곳곳에 배어 있다. 정부 관료 조직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 느낌’이야 말로 이 영화가 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설정 중의 하나이다. 무릇 '자본주의 국가가 사람들에게 해 준 일이 무엇이겠는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 번 ‘그럼에도’, 무엇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그 대체재로서 메노나이트라는 종교집단을 끼워 넣은 것 역시 이 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이다. 메노나이트는 종교 개혁 시기 등장한 기독교 재세례파 공동체로 우리에게는 아미시가 더 잘 알려졌지만 (피터 위어 감독, 해리슨 포드, 켈리 맥길리스 주연의 1985년 영화 ‘위트니스’가 있다) 아미시도 문명 수용의 태도에서 차이를 보이는 메노나이트 분파라고 보면 된다. 주인공 힉의 파트너인 뱅리(조시 브롤린)는 힉이 몇 번이나 ‘메노파’라고 용어를 고쳐주지만, 코웃음을 치며 일부다처제를 일삼는 몰몬교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이는 리들리 스콧이 세상의 멸망에 있어 종교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양가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위기일 때 종교나 종교적 공동체가 대안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그걸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식이다.
 
원제인 ‘도그 스타, The Dog Stars’ 말고 거기에 부제를 붙여서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이라고 제목을 바꾼 것은 이 영화의 국내 수입사인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원래는 20세기 폭스 스튜디오 배급이지만 폭스는 디즈니에 합병되었다)의 고민이 담겨있다. 영화 내내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왜 제목이 도그 스타인가?’라는 질문에 일정 정도 답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인공 힉은 반려견 재스퍼가 죽기 전 종종 벌판에 나가 하늘을 쳐다보며 강아지에게 독백 같은 대화를 하는데 별에 아내 이름도 붙이고 태어나지 못한 아이 이름도 붙인다. 나중에는 애인이 된 시마와도 하늘을 보는데 “저길 봐. 저 별 이름이 빅 재스퍼야”라고 말한다. 죽어서 별이 된 강아지를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담아서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이 된 셈이다. (실제로 밝게 빛나는 별 시리우스의 별칭이 ‘도그 스타’이고 원제가 복수형 Stars인 까닭도 주인공이 그리워하는 이들을 모두 별자리로 부르기 때문이다.)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이 좋은 점 세 번째는 남자 힉과 여자 시마의 러브라인이다. 힉은 아내 멜리사(사이 베넷)를 자기 손으로 안락사시켰다. 뉴욕의 병원에서 레지던트(수련의)였던 시마는 엄마가 유방암 4기로 죽어가는 것을 간호하기 위해 고향 덴버로 돌아왔다가 같은 일을 했던 톰과 헤어졌고 그는 거기서 죽었다. 힉과 시마는 벗어나기 힘든 상처를 지니고 있다. 세상이 위기에 처할 때 사람들 각자가 가져야 할 가장 훌륭한 태도 중의 하나는 ‘자신만 불행하지 않다’라는 공감의 인식이다. 시마는 힉에게 말한다. “알아. 나만 불행한 일을 겪은 것은 아냐.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잃었어” 시마는 힉이 자신에게 말을 하지 않고 세스나를 타고 나다니는 걸 걱정한다. 힉은 종종 세스나의 엔진을 끄고 활공 비행을 한다. 그렇게 그는 로키산맥의 절벽으로 돌진해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사랑했던 멜리사와 강아지 재스퍼에게 가고 싶어 하며 세상의 종말에서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여자친구 시마와 그녀의 아버지 팝스는 그런 그를 걱정한다. 팝스는 힉이 비행에 나설 때마다 “(설마) 그 절벽으로 가려는 건 아니지?”라고 말한다. 시마의 말이 더 애틋한데, “난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워”라고 말한다.
 
노인 감독 리들리 스콧이 봤을 때 그래도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인간’에게 있고 ‘인간과 인간 간의 유대와 연대감’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흩어진 삶을 살던 사람도 누군가를 만나면 정신을 차린다.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며 상대의 삶을 위해 육체적이고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지려고 노력한다. 타인을 위한 자기애는 세상을 견디게 한다. 선한 영향력은 바로 거기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곧 아흔 나이 감독의 최종 결론이다.
 
주인공 힉은 생존 파트너 뱅리가 사람들(극 중에서 ‘바퀴’라 불리는 생존 약탈자들)을 무조건 쏴 죽이는 것을 보고 ‘당신은 세상이 망하기 전에도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공격적이었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극 후반에 리들리 스콧은 뱅리의 독백 아닌 독백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한 해병대원이 있었고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는데 그들을 다 잃은 후에야 그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죽기 전 함께 해 준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 것 때문에 괴로웠다”는 대사이다. 이 부분도 진부하기 그지없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까지 뭐라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게 한다. 사실은 그게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은 한 전설적인 감독의, 교과서 같지만, 이번이 진짜로 마지막이라는 경고성 희망의 메시지 같은 것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원로의 얘기는 들어서 손해 볼 게 없다. 좋은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하워드 혹스에 따르면 어쨌든 세 개의 좋은 점이 있는 영화이다.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은 분명히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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