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4 (수)

  • 맑음동두천 10.1℃
  • 맑음강릉 13.4℃
  • 맑음서울 11.5℃
  • 맑음대전 11.6℃
  • 맑음대구 15.2℃
  • 맑음울산 15.8℃
  • 맑음광주 15.8℃
  • 맑음부산 15.9℃
  • 맑음고창 15.2℃
  • 맑음제주 18.9℃
  • 맑음강화 10.1℃
  • 맑음보은 11.7℃
  • 맑음금산 12.7℃
  • 맑음강진군 16.2℃
  • 맑음경주시 15.4℃
  • 맑음거제 16.4℃
기상청 제공

“자장면 아니세요?”…12년간 600번, 멈추지 않는 ‘따뜻한 한 그릇’

조광석 수원 중사모 회장, 전국 누비며 자장면 나눔
300그릇부터 1300그릇까지…“수명 다할 때까지 봉사”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남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제 수명이 다할 때까지 계속해야죠.”

 

커다란 솥에서 춘장을 볶고 면을 삶아 한 그릇씩 내어주는 일이 어느덧 600번을 채웠다. 전국 곳곳을 찾아 자장면으로 온기를 전해온 조광석(62) ‘수원 중사모(중식을 사랑하는 모임)’ 회장에게 봉사는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이 됐다.

 

조 회장은 5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20년 가까이 이어온 나눔에 대해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중사모는 경기도를 중심으로 12년째 ‘찾아가는 자장면집’을 열고 있다.

 

마을 어르신과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은 물론 군부대와 교도소, 재난·재해 현장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한 달에 평균 5~6차례씩 현장을 찾는다.

 

그렇게 쌓인 발걸음이 지난 3일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마침내 600번째를 기록했다.

 

한 번 봉사에 나서면 적게는 300그릇, 많게는 1300그릇의 자장면을 만든다. 단순히 완성된 음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재료를 손질하고 면을 삶아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한다.

 

조 회장이 이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데는 오랜 중국집 운영 경험이 있다. 그는 과거 20여 년간 중국음식점을 운영했다. 지금은 그때 쌓은 조리 경험을 120명에 이르는 중사모 회원들에게 직접 전수하고 있다.

 

중사모는 조 회장이 2014년 만든 봉사단체다. 회원이 늘어나면서 현재는 경기도에 민간단체로 등록돼 활동하고 있다. 식재료비 등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하지만 조 회장과 자장면 봉사의 인연은 중사모 창립보다 8년 앞선 2006년 시작됐다.

 

당시 ‘효사랑 봉사회’의 요청을 받아 자장면을 만드는 일을 도와준 것이 첫 출발이었다. 처음에는 조리 일을 해주고 일당 9만 원을 받기로 했지만 음식을 받은 어르신들의 표정을 본 뒤 마음이 달라졌다.

 

조 회장은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의었다. 친척집을 옮겨 다니며 생활했고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는 “첫 봉사를 갔는데 어르신들이 자장면 한 그릇을 받고 정말 좋아하셨다”며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아,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날 받은 일당 9만 원을 돌려준 조 회장은 이후 돈을 받지 않고 효사랑 봉사회와 함께 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효사랑 봉사회가 사라진 뒤에도 그의 자장면 봉사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사람들을 모아 중사모를 만들었다.

 

처음 삼삼오오 모였던 봉사자들은 어느새 120명 규모로 늘었다. 이들은 사회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 보육원뿐 아니라 군부대와 교도소까지 찾아가 자장면을 대접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자장면 대신 ‘현장 식당’이 되기도 한다.

 

산불이나 지진, 수해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길게는 일주일씩 머물며 이재민과 복구 작업에 나선 봉사자들에게 아침·점심·저녁을 챙겨준다. 한 끼를 대접하는 봉사를 넘어 재난 현장의 급식 지원까지 활동 영역을 넓힌 셈이다.

 

600번의 현장을 지키는 동안 조 회장의 건강에도 위기가 있었다. 뇌출혈을 겪었고 고관절 수술도 받았다.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봉사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한다.

 

오랜 시간 한 지역에서 자장면을 나누다 보니 이제는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조 회장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어르신들이 저를 알아보고 ‘자장면 아니세요?’라고 물어볼 때가 있다”며 웃었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한 끼일 수 있는 자장면이지만 그가 만든 한 그릇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남는다.

 

그래서 조 회장은 600이라는 숫자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600번째가 끝났다는 것은 다시 601번째 자장면을 만들 차례가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제가 만든 음식을 드시고 ‘맛있다’, ‘고맙다’고 말씀해 주시면 그게 그렇게 좋습니다.”

 

그에게 봉사는 남을 위해 무언가를 내어주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그의 ‘자장면집’에는 아직 마지막 영업일이 없다.

 

[ 경기신문 = 김태호 기자 ]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