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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범의 미디어 비평] A씨부터 H씨까지… 익명 뒤에 숨은 언론의 책임


“특징주 기사 쓰면 돈 준다. 새끼치기식 수익 키운 선행매매 일당” 9월 18일 한국일보가 사회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기자들의 선행매매 사건 제목이다. 유사투자자문업체와 손잡은 기자들이 주식을 미리 사둔 뒤 기사를 내 주가를 띄우고 팔아치워 부당이득을 챙긴 사건이다. 언론계 내부의 치부를 과감하게 드러낸 보도 자체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기사를 읽다 보면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범행에 가담한 인물들이 A씨부터 H씨까지 온통 익명으로 처리돼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자문업체 대표, B·C·D씨는 각기 다른 매체의 기자였다. 이들은 텔레그램으로 공모하며 특정 기사를 1000건 넘게 뿌리고 억대의 대가를 챙겼다. 하지만 독자는 이들이 어느 언론사 소속인지, 뉴스룸 내 어떤 위치였는지 알 수 없었다. 사건의 얼개만 드러냈을 뿐, 언론의 책임을 다한 보도라 하기는 어렵다. 좋은 식재료를 두고도 요리를 그르친 꼴이다.


익명 보도는 내부고발자나 권력기관 관계자처럼 실명을 밝히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취재원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최근에는 이 예외적 장치가 언론의 편의적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 전문 월간지 '신문과방송' 2026년 8월호는 ‘가려진 얼굴, 흐려진 신뢰: 익명보도와 모자이크의 딜레마’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언론의 관성적인 익명 활용은 저널리즘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오죽하면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한국인의 성으로 ‘A’씨가 가장 많다는 우스갯소리까지 회자되는 실정이다.


방송 화면의 모자이크 처리도 마찬가지다. 국내 사건·사고 보도에서 화면 처리가 적용되는 비율은 50%를 상회한다. 미국 NBC(12.9%), 영국 BBC(9.7%), 일본 NHK(1.6%) 등 해외 주요 언론과 비교하면 기형적으로 높은 수준이다(2023년 한국방송학보). 화면을 가리고 목소리를 변조하는 것이 인권 보호라는 단순한 공식에 빠져 시청자의 알 권리와 생생한 현장성을 저해하고 있다.


익명과 모자이크 처리는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보호해야 할 약자를 위해 가렸는가, 아니면 취재와 편집의 편의를 위해 활용했는가. 피고인들의 법적 권리와 인권은 재판 과정에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언론인의 직업적 지위와 소속이 범행의 핵심 수단이었다면, 독자가 사건의 공익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까지 모조리 ‘알파벳’ 뒤에 숨기는 것은 저널리즘의 정도가 아니다.


이제 언론은 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 익명은 엄격한 예외로 제한하되, 불가피할 경우 기사 안에서 그 사유를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이름을 가리더라도 소속과 직책, 역할 등 독자가 신뢰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가능한 범위에서 밝히는 것이 옳다. 또한 언론사 내부에 익명 및 모자이크의 남발을 통제할 수 있는 절차를 뉴스룸 안에 제도화해야 한다.


언론의 신뢰는 무엇을 폭로했는가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보도했는가로 완성된다. 남의 비행과 불법을 고발하는 언론일수록 스스로의 보도 관행부터 투명하게 돌아봐야 한다. 익명은 약자를 보호하는 방패여야지, 언론인과 언론사의 책임을 흐리는 가면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화면 속 가려진 얼굴과 익명의 행렬이 늘어날수록, 언론을 향한 독자의 신뢰도 함께 흐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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