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은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이었다. 언론 지상에 그러한 1년의 성과와 과오를 분석하는 특집 기사들이 넘쳤다. 기사마다 빠지지 않은 것은 정치, 사회, 경제 전반의 심각한 퇴행 상황이었다. 1주년 당일, 보수의 아성이라 불리는 대구에서 터져 나온 시국선언은 정부에 대한 시민사회의 총체적 평가라 불러야 마땅하다. 이 도시의 25개 시민단체는 이렇게 단언했다. “민생을 파탄시키고, 민주주의를 짓밟고, 평화를 파괴하는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는 투쟁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 왜 이토록 혹독한 평가가 나올까. 3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불통(不通)이다. 필수적 대화 상대와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취임 1년이 지났는데도 제 1야당 대표와 공식 회담을 갖지 않은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윤석열 대통령 밖에 없다. 서열과 관례 상 하위에 있는 야당 원내 대표 혹은 국회 상임위원장들과 만남은 적극 제안하면서도 정작 당 대표는 제외한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당시 야당 총재는 집권 기간 내내 격렬히 충돌했다. 그럼에도 무려 7차례나 공식 회동을 했다. 삼권 분립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소통과 타협은 대통령의 절대 의무다. 안 하고 싶다고
1. 봄이 오면 꽃을 구경하러 다닌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인의 말처럼, 잠시 왔다 사라지는 찬란한 계절의 이름을 직접 불러줘야 할 것 같아서. 꽃들은 저마다 아름다움이 다르다. 바람에 고요히 흔들리는 목련에는 순백의 기품과 고고함이 있다. 벚꽃은 일시에 피어났다 비처럼 떨어지는 낙화(落花)가 아름답다. 산수유는 봄 햇살 맞으며 소풍 떠나는 아이 웃음을 떠올리게 하고, 개나리는 돌담 아래 미소 짓는 순박한 새악시 같다. 진달래, 배꽃, 철쭉, 등꽃, 연산홍은 또 어떤가. 이 땅의 길섶에 피어나는 이름 없는 들꽃조차 봄에는 모든 것이 눈부시다. 주말에 복사꽃을 만나러 갔다. 경상북도 영덕에서 ‘복사꽃 큰 잔치’가 열린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동해안에서 안동으로 넘어가는 34번 국도변의 복사꽃이 그렇게 곱다는 이야기였다. 황장재를 넘어 굽이치는 오십천 물길 옆에 수줍게 두근거리는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는 소식이었다. 두 시간 넘어 차를 몰았다. 하마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꽃이 벌써 다 떨어져버린 것 아닌가. 가지마다 연두색 어린잎이 무성히 돋아나고 있었다. 초봄부터 시작된 이상 고온 탓에 예
1. 광고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티브이와 잡지와 온라인에서 네온사인처럼 번쩍이는 메시지들. 그 현란한 세 치 혀에 설득되어 필요도 없는 물건에 돈을 쓸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취급을 받아도 싸기는 하다. 멀쩡히 잘 사용하던 기존제품에 싫증을 느끼게 만들고 새 물건을 구입하도록 부추기는 일종의 요물이니까. 밤을 낮 삼아 아이디어 짜내는 광고인들이 이런 평가를 들으면 억울할지 모른다. 하지만 광고사에 아로새겨진 업보가 분명하다. 특히 2차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차처럼 질주하던 19세기 중엽 이후가 그랬다. 미국과 유럽의 광고산업 규모가 커지고 광고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사회적 부작용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허위와 과장을 써서라도 물건만 팔고 보자는 판매지상주의가 도를 넘은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이 광고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을 불러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1850년대 미국 대중신문은 수익의 3분의 1 이상을 광고수익으로 벌어들였다. 이런 재정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광고는 신문발행인들에게조차 일종의 ‘필요악(必要惡)’ 취급을 받았다. 광고의 이러한 처지는 순수 예술과 명백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었다. 음악,
1. 레토릭(rhetoric)은 ‘말과 글을 도구로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이다. 수사학자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레토릭은 B.C. 467년 시칠리아 시라큐스의 법정 변론에서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레토릭은 양날의 칼이었다. 타당한 설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쓰이는 건강한 레토릭이 있다. 반면에 일그러진 언어로 진실을 왜곡하는 타락한 레토릭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 정보기관은 작전 수행 시 의도치 않게 민간인이 사망하는 것을 “부수적 피해”라고 부른다. 가치판단을 말끔히 소거함으로써 현실의 참혹을 감추는 타락한 레토릭의 전형이다. 윤석열정부가 앞선 정부들과 크게 다른 특징을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검사 출신들이 요직에 압도적으로 많이 배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압수수색 횟수 또한 역대 최고다. 과거에는 정치권 내부 공방에 불과했던 사안에 대하여 대통령실이 직접 형사고발을 한다. 법무부 장관이 (언론의 취재권리 억압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기자 접근 금지를 법원에 신청하기도 한다. 2.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차별점은 역시 기괴한 레토릭의 대잔치다. 세계적 웃음거리가 된 “바이든이 날리면” 소동은
1. 정의연(정의기억연대) 관련 기부금 전용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속칭 윤미향 사건이다. 온 나라를 활활 불태운 마녀사냥, 그 불길이 사그라들고 팩트가 모습을 드러낸 게다. 늘 그러하듯 검찰이 장작에 기름을 붓고, 타오르는 광란의 불길 앞에서 언론이 칼춤을 췄다. 검찰은 보조금관리법 위반, 지방재정법 위반, 사기, 기부금품법 위반, 준사기, 업무상 배임, 업무상 횡령,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등 8개 혐의에 대한 기소를 감행했다. 하지만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부는 이 중 7개 혐의에 무죄를, 10년 동안 1700만원을 가져다 썼다는 업무상 횡령 혐의에만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살펴보면 유죄판결 부분도 논란의 여지가 다대하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지출 항목에서 영수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등 회계관리 부실이 이유였다. 일반 기업에 비해 회계처리가 치밀할 수 없는 것이 시민단체의 불가피한 환경이다. 이런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채 세부 입증 자료 부실이라는 기계적 기준을 적용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1700만원이라는 금액이다. 해당 기간이 10년 동안이다. 간단한 나눗셈을 해보자. 1700÷10×12=1
1. 몇 년 전 텍사스에 교환교수를 다녀왔다. 오스틴 북쪽, 집 근처 마트에 장 보러 갔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장애인 주차장의 승용차 뒷범퍼에 이런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DISABLED & PROUD’. 장애가(부끄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미국의 빈부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레이건 집권 이래 30년 이상 가혹한 신자유주의적 수탈을 통해 재화가 극단적으로 최상층에게 쏠렸다. 경제학자 피케티가 주도하는 《세계불평등보고서(World Unequality Report)》에 따르면, 2022년 미국 전체 가구 순자산에서 상위 10퍼센트가 차지한 비중이 70.7퍼센트다. 반면에 하위 50퍼센트는 고작 1.7퍼센트에 불과하다. 불법이민자, 사회적 약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무덤 위에 쌓아 올린 바벨탑이다. 인종차별과 총기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암종(癌腫)이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이 나라가 부러운 것이 있었다. 주눅 들지 않는 장애인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존재를 별나게 바라보지 않으면서도 법적, 제도적, 문화적으로 최우선시하여 배려하는 사회적 합의였다. 2. 새해 이튿날 아침 장애인 권리 예산 증액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동
1.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를 빌리자면, 성(性)에 대한 관심은 우월적 종족 보존을 위한 DNA의 절대 명령입니다. 거부할 수도 뿌리칠 수도 없는 유혹이지요. 사랑과 섹스 이야기가 세계 각국의 신화와 전설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폼페이(Pompeii)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근처에서 융성했던 환락도시였습니다. 그런데 A.D. 79년 8월 24일 비극이 닥칩니다. 근처의 베스비우스 화산이 폭발한 거지요. 거대한 용암과 유독 가스가 도시를 덮칩니다. 수만의 생명이 불길과 화산재 아래 묻혀버렸습니다. 이 도시는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졌다가, 1592년 밭을 갈던 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됩니다. 본격적 유적 발굴은 1748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로마 전성기의 문화와 생활풍속이 기적처럼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게 되지요. 2018년 폼페이의 레지오 브이(Regio V) 유적지구에서 새로운 프레스코 벽화 하나가 발굴됩니다.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발견이었지요. 그리스 신화를 다룬 내용이었습니다. 천하의 난봉꾼 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하여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를 유혹하는 이야기. 이때 레다가 임신을 해서 알을
1. 그날 밤은 일찍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를 듣자마자 나를 덮친 것은 공포였다. 2가지가 뒤섞인 두려움이었다. 첫 번째는 만에 하나 서울 있는 아이의 안전에 대한 그것. 핏줄을 향한 본능적인 감정이었다. 두 번째는 예전에 분명히 느낀 적이 있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선명한 공포감이었다. 세월호 참극이 데자뷰처럼 떠오른 것이다. 어떤 거대하고 더러운 힘이 종이장처럼 세상을 구겨 부수는 것을 목격하는 심정. 아들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안 받는다. 초조한 심정으로 다시 재발신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전화를 받는다. 아비의 초조함과 달리 아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른 시각에 왜 전화를 했는지 아는 눈치다. 이태원에는 안 갔다고 집에 있었다고, 먼저 나를 안심시키고 위로한다. 무능과 기복적 망상에 전적으로 의지한 박근혜 정권에 이어 윤석열 정권에서 다시 참극이 일어났다. 우연이 아니다. 타인의 생명과 안전에 대하여 권력 핵심과 하부 실행체계 전체가 (역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둔감하고 얼이 빠졌기 때문이다. 2. 막을 수 있는 참극을 못 막은 것이 문제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사후 대처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건 발생 즉시 5일 간의 국가애도 기간을
1. 사폴리오(Sapolio)는 1870년대부터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하여 20세기 초까지 널리 팔린 비누였습니다. 출시 후에 팸플릿을 중심으로 판매를 이어가다가 1884년이 되면 본격 광고를 시작합니다. 아테머스 와드(Artemas Ward)라는 사람이 광고 책임자로 부임하고 나서부터였지요. 와드는 자신이 지휘해서 만든 광고를 지역 신문과 잡지에 대량으로 게재합니다. 그가 만든 독특하고 대담한 크리에이티브는 곧 전국적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지요. 특히 만화(cartoon) 풍의 일러스트레이션과 “만약에 (If...)"라는 가정법 카피를 결합시킨 일련의 시리즈 광고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문제는 광고 가운데 아래와 같은 사례가 등장했다는 겁니다. 헤드라인은 “만약 인디언에게 사폴리오 사용을 가르쳤더라면, 그들은 훨씬 빨리 문명화되었을텐데...”입니다.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는 아메리칸 인디언. 그가 둘러쓴 망토 위에 “미국(U.S.)의 사폴리오를 쓰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적혀있습니다. 지는 해를 향해 말을 타고 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상당한 거북함을 느꼈습니다. 유머소구의 외피를 입었지만 그 바탕에 일그러진 시각을 품고 있는 광
1.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으니 어린 나이라도 자잘한 추억들이 남아 있을 법하다. 그런데도 몇 가지 파편 외에는 이상할 정도로 머리속에 남아있는 게 없다. 그중 하나. D시 달성동 329번지, 한옥 집 대청마루. 어느 봄날의 오전이었을 게다. 동쪽으로 네모난 창에서 비쳐든 햇살이 마루 저쪽까지 길쭉하니 하얀색 꼬리를 빼물고 있었으니. 양철 바케스 안에서 자라 서너 마리가 숨을 들이마시느라 뻐끔대며 물 위로 코를 내밀던 장면이 떠오른다. 한참동안 아팠다가 회복된 나를 위해 자라를 잡았던 모양이다. 어여 마셔라, 크고 하얀 사기 대접에 넘치는 생피의 비릿함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나는 꾸역꾸역 그걸 다 마셨다. 그렇게 해야 어머니가 좋아할 것을 아니까. 가톨릭계 사립인 H초등학교 입학 추첨에서 떨어진 날도 기억이 난다. 바람이 무척 매서운 날이었다. 추위를 피해 성당 건물 한 켠 양지바른 곳에서 손을 잡고 기다리다가 잘못된 ‘은행알’ 골랐다는 최종 발표에 그만 울어버렸다. 그리고 입학한 동네 근처 S초등학교 입학식 날. 왼쪽 가슴에 핀을 꽃아 늘어 맨 손수건이 조금 비뚤어졌던가 보다. 어머니는 군청색 한복 두루마기 자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