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의 그림에는 주로 나무와 새, 소, 달, 산, 사람 등이 등장하는데 표정 하나하나가 우스꽝스럽다. 어느 하나 특출 난 것 없이 두루뭉술하다. 모두 어깨동무를 한 것 같다. 이 때문인지 장욱진의 그림 세계를 불교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수행의 십우도(十牛圖) 중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廛垂手)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입전수수는 이른바 깨달음을 성취하고 난 뒤 중생 속에서 아픔을 함께하는 보살도의 단계다. 한자 '전(廛)'이 말뜻을 잘 나타낸다. '전빵(전방)'의 '전'자와 같은데 가게를 상형한 것이다. 가게는 저잣거리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입전수수는 저잣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쉽게 풀이가 된다. 저잣거리에서 대중들과 함께 한 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느냐만 한 사람만 꼽으라면 우리는 신라시대의 원효를 드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머리를 기른 채 저잣거리에서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았다. 부처가 대중 속에 깃들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승려와 신도, 엘리트와 대중, 권력자와 피지배층이라는 이분법이 들어설 틈이 없었다.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도 초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후는 원효 지우기 시대였
지역 방송(경남MBC)에서 만든 다큐 '어른 김장하'가 SNS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60여 년 이상 경주 최 씨 못지않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묵묵히 실천해 온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런 사람을 이제 알게 됐다는 것도 한몫했을 터이다. 또한 오랜 세월 지역 언론의 가치를 위해 싸워 온 경남도민일보 출신의 김주완 기자가 100여 명을 인터뷰 하는 등 완성도가 높은 것도 감동을 주는 요인이 아닐까한다. 김장하 선생은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명의로 이름을 떨친다. 직원이 20명 가까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직원들의 월급은 다른 한약방에 비해 3배나 많았다. 그의 사회 공헌이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다 급기야 현대적 시설의 고교를 설립해 자립시킨 뒤 100억 원이 넘는 학원을 미련 없이 국가에 헌납한다. 지역 언론과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운동 등 지역 사회 곳곳에 지원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선생은 지원은 하되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지역 국회의원이 자신이 추천한 사람을 고교 교사로 임용하라는 청탁을 무간섭
전호근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는 『한국철학사』에서 현대철학자로 함석헌, 장일순 등 6명을 다루고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독창성에 있다. 동서양 철학의 각주가 아니라 한국적 삶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일제에서 해방되어 근대를 거치지 않고 현대로 직행한 한국은 여러 모순의 집합체다. 이 모순을 끊어내려고 줄기차게 싸워왔던 게 한국 현대사의 자기정체성이기 때문에 이에 기반한 철학이 태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 현대 철학자들 중 김상봉 교수(전남대 철학과)는 "우리의 역사에 뿌리박은 철학의 형성"을 궁극적으로 지향한다. "한국의 주류 철학계가 철학을 외부에서 얻어오는 일에 골몰하여 자기로부터 새로운 보편적 세계상을 형성해내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는 철학을 "자기 속에서 세계를 만나며 세계 속에서 자기를 만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한마디로 '만남의 철학'인 것이다. 김 교수는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에서 "진리는 만남에 있다"고 선언한다. 진리하면 고차원적인데다 난해한 철학적 명제로 알고 있는 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고작 사람과 사람의 부딪힘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은 얼마나 평범하며 비철학
대장동 사기 사건의 종범인 전 성남도시공사 기획본부장 유동규 씨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진상 씨가 대한민국을 먹자고 말했다" 고 밝힌 바 있다. 정 씨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측근이자 정치적 동지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을 먹자고 비속어로 표현한 속내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체포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 운운한 것과 정면 배치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점령이나 통치, 권력을 통한 부패를 뜻하지 않는다.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에 사안의 본질이 들어 있기도 하기 때문에 정 씨의 말을 지나칠 수 없다. 그 야심에 대입해보면 대장동 키맨 김만배 씨가 천화동인 1호에 1억 465만 원을 출자해 이름 그대로 만 배의 수익(1208억 원)을 올린 것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김 씨의 소유든 "이재명 측 소유라고 들었다"는 공범 남욱 변호사의 전언이 진실이든 터무니없는 야심이 한국 현대사회에 칼을 꽃은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장동이라는 칼날을 뽑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대장동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면 민주당이나 국민의힘당도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대장동 사기 사건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은 동일한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는 존재이다. 처해있는 상황이 제각기 다른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발생한 사건은 부풀리거나 축소되는 등 각색되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를 라쇼몽 효과라고 하는데 일본의 세계적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 유래했다. 『라쇼몽』은 무사(사무라이) 부부가 산길을 가다 산적에게 붙잡혀 벌어진 일을 저마다 다르게 진술하는 단순한 영화다. 그러나 사실이 미궁에 빠져 인식에 어떤 까닭이 있어선 지를 묻는 심오한 영화이기도 하다. 산적은 당당하게 결투를 벌여 무사를 죽였다고 진술한다. 반면 무사 아내는 산적에게 겁탈 당한 자신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에 남편을 죽였다고 말한다, 죽임 당한 무사는 무당의 말을 통해 (수치심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한다. 무사의 죽음만이 팩트인 것이다. 라쇼몽은 팩트를 주관적으로 비트는 인간의 심리를 잘 포착해 낸 영화다. 하지만 우리는 라쇼몽을 비웃기라도 하듯 없는 사실을 마치 있는 것처럼 기정사실화하는 '팩트 가공' 시대에 살고 있다. 우스꽝스런 이 가공은 비이성 그 자체이지만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많아 가히 주술적이다.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는 팩
정치·사회적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 사회 분열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고인들의 이름을 모 인터넷 매체가 공개했는데 이를 두고도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공개를, 다른 한쪽에서는 비공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의 말을 경청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상대에게 논점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말을 함으로써 토론 자체를 무력화 시킨다. A가 논점인데 B라는 논점으로 이동하면 토론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토론이 가능하려면 A 범주 안에 있어야만 한다. A1, A2, A3 등 중학교 수학시간에 배우는 인수분해 동류항 A를 벗어나면 식이 성립되지 않거나 다른 차원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토론뿐만 아니라 짧은 글이든, 시든, 소설이든 동류항 묶기에서 벗어나면 실패작으로 본다. 논점이 일관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토론이나 글쓰기는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의 명대사인 "한 놈만 패라"가 철저하게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다. 논점이탈은 십중팔구 상대를 비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풍경은 우리가 주변에서 숱하게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일그러진 생각들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정부와 지자체의 직무유기에 따른 인재인데도 젊은이들이 놀러가서 생긴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의 의무인 안전은 오간데 없다. 사회 일각에서 왜 이런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축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한 게 아닌가 한다. 이태원 핼로윈 축제를 의미 없는 유흥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은 참가자들을 비난하는 글로 가득 차 있다. "축제라기보다 하나의 현상"이라고 말한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인식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에 대한 국가 지원을 반대하는 국회 국민청원이 일주일 만에 목표치인 5만 명을 달성한 것은 그 정점에 해당한다. 이런 인식은 한국에서 자발적 축제문화가 강릉 단오제 등 소수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끊긴 것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의 조선총독부와 박정희 군사정권 등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축제를 미신으로 프레임 씌웠다. 90년 대 이후 축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나 지자체 주최의 지역 축제나 상업적 축제가
“의리? (웃음) 그런데 이 세계는 그런 게 없더라. 내가 착각 속에 살았던 거 같다. 구치소에서 1년 명상하면서 깨달은 게 참 많다. 내가 너무 헛된 것을 쫓아다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장동 사기사건의 종범인 유동규 씨가 최근 기자들을 만나 쏟아낸 말을 중앙일보가 보도한 것이다. 그는 거침이 없었다. 대장동 주범 의혹이 일고 있는 자들을 향해 자신과 연루된 범죄 내용을 사실대로 밝히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실명을 거론해 그 파장은 가히 메가톤급이다. 그의 말에는 꼬리 자르기 식으로 자신을 손절한,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 깊이 배어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자기성찰도 크게 자리 잡고 있어 반전을 보여준다. 이 반전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야기 구조의 중요 요소여서 유동규 씨가 오랜 동안 화제가 될 지도 모른다.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차용될 가능성도 점칠 수 있다. 대장동의 음습함을 거의 사실에 가깝게 그려 화제가 되었던 김성수 감독의 영화 '아수라'에는 없는 캐릭터이자 반전이어서 꽤 매력적일 것이다. 아무튼 반전은 유동규 씨의 과거와 현재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그는 대장동 부동산 개발 사기사건의 행동대장 격으로
최근 수도권의 전 기초자치단체장 2명이 법정구속 되었다. 민선 7기 성남시장 은수미 씨(민주당)와 민선 6기 용인시장 정찬민 씨(국민의힘)가 주인공인데 범죄혐의 공통분모는 뇌물수수다. 이들의 혐의를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장의 고질적인 병폐를 단적으로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수미 씨는 보도된 대로 지난달 16일 1심 재판(수원지법)에서 징역 2년 및 벌금 1000만원, 추징 467만원 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은 씨가 받고 있는 범죄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뇌물공여 및 수수, 청탁금지법 위반 등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은 씨는 자신의 정치자급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담당 경찰관 김 아무개 씨(구속)로부터 수사자료 일체를 넘겨받는 대가로 김 씨의 지인 업체에게 4억5000만원 규모의 공원 터널 교체공사를 허가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은 씨는 자신의 보좌관이었던 박 아무개 씨(구속)에게 돈과 고가의 와인 등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심지어 은 씨는 경찰관 김 씨의 내연녀인 보건소 직원의 보직 부여라는 인사 청탁을 들어주기까지 했다. 은 씨의 뇌물 공여와 수수는 기초자치단체장의 인허가권, 인사 청탁은 인사권에
넷플릭스 6부작 수리남은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다. 칼과 총으로 사람을 찌르고 쏘는 거대한 액션물이지만 구성이 치밀해 끝날 때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스토리텔링의 교과서 격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메시지 중 으뜸인 '캐릭터보다 플롯'에 충실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빼어난 스토리텔링 극답게 인과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드러난다. 극중 전요환(황정민)은 중남미 소국 수리남에서 교포 등을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하는 목사인데 할렐루야, 순수한 마음, 형제님 등의 말을 일상적으로 구사한다. 하지만 목사라는 직업은 마약 밀매를 위한 위장술이다. 이 반전에 주목해야한다. 전요환은 그 많은 직업 중에서 하필이면 왜 목사를 택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이 수리남의 메시지일 것이다. 이런 메시지가 없다면 수리남은 한낱 폭력물로 끝났을지 모른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목사는 하나의 직업이지만 종교적·사회적 권위를 부여받는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목사가 부르짖는 말은 세속적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가닿고 싶은 순수하고 신성한 세계일 터이다. 이쯤이면 전요환이 왜 자신을 목사로 위장했는지 쉽게 이해된다. 마약 밀매라는 거대한 악의 세계를 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