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인류는 발전과 경제성장만을 앞세워 질주해 왔다. 그 질주가 남긴 청구서는 가혹하다. 극심한 빈부격차, 고용불안, 지역 공동체 해체, 그리고 벼랑 끝에 몰린 돌봄 공백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양적 팽창보다, 사람이 살아갈 삶의 터전과 자연을 회복하는 일이 더 시급해졌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제는 시장에서 이윤을 남기는 행위에 국한돼 있다. 여기에 중대한 착시가 서려 있다. 시장과 경제를 동의어로 보는 오판이다. 시장 기반의 교환이 경제의 전부라고 믿는 순간, 사회는 인간 공동체가 아닌 ‘시장사회’로 전락한다. 본래 경제는 인간의 삶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돼 사회 전체가 시장의 원리에 맞춰 춤추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는 경제란 돈을 버는 기술이기 전에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삶의 방식’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사회를 지탱하는 경제의 통합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시장적 ‘교환’,모아서 나누는 ‘재분배’, 서로 돕는 ‘호혜’를 꼽았다. 만약 경제를 오직 시장과 개인의 이익으로만 설명하려 든다면, 이는 인류 역사상 매우 예외적이고 기형적인 순간을 보편이라 우기는 꼴이다. 이
올해 5월 스탠퍼드 스타디움에서 BTS(방탄소년단)가 공연을 했다. 스탠퍼드대학은 BTS가 지역사회와 대학 공동체에 미치는 현상을 설명하며 이 그룹을 현대문화의 선도자이자 세계적인 목소리로 소개했다. 더불어 대학은 학생들에게 세계적인 문화현상을 직접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공연의 중요한 목적임을 밝혔다. BTS와 아미(ARMY)는 단순한 가수와 팬의 관계를 넘어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사회적 공동체이다. 전 지구상에 걸쳐 1억 명으로 추산되는 BTS의 아미는 “함께 성장하고, 함께 사회를 변화시키는 연대”이다. 2013년 데뷔한 7인조 그룹 BTS는 노래와 음악을 통해 자신의 고민과 청춘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꿈과 사랑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하고 있다. 그들은 노래를 통해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와 불안, 좌절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대중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러한 진정성으로 BTS는 국적과 언어를 초월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고 세계적인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BTS의 팬클럽인 아미(ARMY)는 ‘Adorable. Representative. M.C.(Master of Ceremonies
현대인은 끊임없는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일상을 살아간다. 유행이나 성공, 새로운 정보에서 자신만 뒤처질까 두려워하는 ‘포모(Fear Of Missing Out: FOMO)’ 현상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일상이 되었다. 소셜미디어가 보여주는 타인의 화려한 일상과 물질적 성취는 과도한 비교를 강요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 소유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탐욕을 부추긴다. 반면, 모든 기회를 억지로 붙잡으려 애쓰지 않고,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기준에 따라 삶의 여유와 만족을 찾는 ‘조모(Joy Of Missing Out: JOMO)’를 추구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삶은 모든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경주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경제사상가 칼 폴라니는 그의 이론 속에서 현대인의 이 두 심리적 대립을 예견했다. 그는 전체 경제를 파악하기 위해서 두 개의 조망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경제를 인식하는 인류의 시선을 ‘외적 조망’과 ‘내적 조망’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설명했다. ‘외적 조망’은 경제가 사회와 동떨어진 별개의 독립적 영역으로 존재하며 시장 중심의 무한 경쟁, 자본의 이윤,
우리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기술사회에 살고 있다. 기술사회의 특징 중 가장 대두되는 것은 인간소외의 문제이다. 본래 시장은 개인들을 파편화해서 공동체조직을 해체해야 돈을 번다. 만일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상황이라면 시장이 들어갈 구멍이 작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 간에 관계가 잘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돈이 적게 드는 ‘사람의 살림살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릴 적 내게 어머니는 어머니 이상의 '관계'였다. 나는 어머니가 외출하실 때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두려웠다. 어머니는 옷감을 떼어다가 판매하는 일로 장거리 기차 여행을 자주하셨다. 늦둥이인 나는 자주 그 여행에 대동되곤 했다.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어머니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으려는 막내딸의 애원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무역 동행에서 내가 맡은 일은 옷감 비용을 보관하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돈주머니인 전대를 내 몸에 둘러 채우시고 그 위에 옷을 입혀주셨다. 기차가 산과 나무와 풀들을 스치며 지날 때 어머니는 내게 더 넓은 세상을 얘기해 주셨다. 성인이 되면서 나는 어머니와 동행했던 그 순간들 속에서 사회적 관계와 경제의 작은 부분을 어렴풋이 체득했음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오일장이 서는 장날이면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