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 의식이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고독하다. 그 고독은 때로는 이상하고 낯설며 괴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생각이 부족한 사람은 여러 가지 기분전환을 시도하며, 괴로운 고독의 의식에서 도피하고자 의식의 높은 곳에서 바닥을 향해 내려가고 만다. 이에 반해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그 높은 곳에 계속 머물러 있다. 개체는 유한하다. 그러므로 신은 결코 개체일 수가 없다. 그런데 기도는 신에 대한 호소이다. 개체가 아닌 것에 어떻게 호소한단 말인가? 천문학자들은 정말로 움직이는 것은 그들의 시야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별자리가 아니라, 자신들이 천문대와 망원경을 설치한 지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역시 지구의 움직임이 아니라 별자리의 움직임을 기록한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도도 바로 그것과 같다. 신은 개체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개체이기 때문에, 자신과 신의 관계를 신이 개체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개체와의 관계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개체를 인격체로 이해하는게 더 옳을 것 같다. 옮긴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 우리의 시대가 오늘날 사로잡혀 있는 이기주의와 회의와 부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선거 막판까지 여론조사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할 것인가? 그렇지 못할 수 있다. 이번처럼 주요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높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나온 여론조사 결과조차 지지율이 엇갈리는 초접전 상황이다. 여야 대선 주자 모두 ‘가족 리스크’로 지지율 자체가 하락했을 것임은 분명해 보이지만 이로 인해 누구에게 표가 더해지고 빠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 상당수 언론은 양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지지율 득실을 따져가며 누가 앞서고 누가 뒤지느냐를 점치는 ‘경마 중계식 저널리즘’을 선뵈고 있다. 언론이 선거를 경마 중계하듯 흥미진진한 게임처럼 해서 누가 결승점에 먼저 도착할지 주목하게 하는 보도 방식이다. 이렇게 보도하면 선두 그룹 후보자에 대한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집중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대신 후보자가 내놓는 정책이나 이념의 문제는 재미가 크게 떨어진다. 독자는 경쟁 상황 자체에 조급할 뿐이다. 조금이라도 앞서길 바라고 마음이 닿는 후보가 이 게임에서 맹렬하게 앞만 보고 달려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니까 더 고집스러워지기도 쉽다. 지난 20일 선거 80일을 앞둔 시기 KBS가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는 33.7%, 윤석
얼마 전 위드코로나의 실시로 이제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잠깐,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새로운 변종 오미크론과 확진자의 기록적 상승, 돌파감염 등은 강화된 방역조치를 필요하게 했고 다시 불안속에서 힘든 연말을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생의 분명한 원인도 모르는 상황속에서 백신 효력에 대한 신뢰 부족은 아마도 우리들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WHO의 어느 한 간부가 백신 나눔의 실천 실패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 발언이 가슴에 와닿는다. 2년이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 팬데믹이나 기후재앙 등에서 하늘이 주는 메시지를 잘 해석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의 관계가 나눔과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 갈취의 대상으로 전락한 인간들의 극도의 이기심이 오늘날의 자연재해를 가져왔다고 확신한다. 남북관계에서도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나눔의 실패가 오늘의 어려운 남북관계 상황을 만들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2017년 5월 새롭게 출발한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재개를 위한 호의적 접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6차 핵실험과 ICBM의 시험발사로 우리를 긴장케 했다. 1990년대…
의복문화가 ‘맞춤복’ 시대에서 ‘기성복’ 시대로 급변해온 역사는 자본주의 번영의 상징이죠. 주변에서 ‘맞춤복이 기성복보다 낫다’는 인식은 이제 사라졌어요. 큰돈을 들이더라도 제대로 된 맞춤복 한 벌 장만해서 오래도록 입는 게 지혜였던 시대에서, 괜찮은 기성복 마련해서 적당히 입다가 새 옷 사 입는 게 미덕인 시대로 바뀐 거죠. ‘요새는 기성복이 맞춤복 못지않게 잘 나온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돌잖아요. 이런 시대변화 때문일까요. ‘새것’을 너무 좋아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어요. 쉽게 ‘새것’을 손에 쥘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의 가치관도 바뀐 것이죠. 이런 사회적 현상에 영악하게 편승한 게 정치권에 등장하는 ‘새 인물’ 영입 경쟁이에요. 대선·총선·지방선거 가릴 것 없이 각종 선거에서 새 얼굴을 선보여 표심을 홀리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어요. 내년 3월 20대 대선을 앞두고 펼쳐지는 여야 정치권의 선거전에 토라진 청년·여성들의 표를 훔치기 위한 인재 쟁탈전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군요. 새 물을 끌어들여 썩은 담수(潭水)를 정화하는 시스템을 시비할 이유는 없지요. 하지만, 선거철마다 경쟁적으로 꾀해지는 ‘새 얼굴’ 영입전은 조잡한 이미지 정치의 소산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유명한 저서이다. 제목은 지식인을 위한 변명인데 내용은 지식인을 비판하고 있다. 왜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비판했을까?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지식인은 사회의 특정 계층에 묶여 그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닌, 계급적 이해관계를 넘어서고 초월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진리의 수호자이다. 그들은 사회 진보에 기여하고 다수의 이익에 봉직함으로써 그 정체성을 현재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지식인을 지배 수단을 연구하는 단순한 기능인으로 취급하여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데에 이용할 뿐이다. 이때 피지배계급에게 지식인은 지배계급의 앞잡이로 전락한다. 이런 지식인을 사르트르는 지식 판매꾼이라며 맹비난했다.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부당한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자들은 지식을 팔아먹는 지식 판매꾼이라는 것이다. 과거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을 만들고 또 그 정당성을 홍보하고 다니던 학자들부터 4대강을 꼭 정비해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조용조용히 설파하던 뱀의 혀를 가진 자들이 그들이다. 대선 정국이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각 진영마다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지식인들이 지지그룹으로 발표되고 있다. 눈에 가장 띄는 것은 교
진정한 행복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그것은 물체의 그림자처럼 선한 생활에 항상 따르기 마련이다. 신은 우리를 더욱 선하게, 더욱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의 눈앞에 또는 우리 가까이에 갖다 두었다. (세네카) 자신의 생명을 정신적 자기완성 속에 두는 사람은 불만을 느끼는 일이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이다. (파스칼) 진정한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활동은, 언제나 쾌락의 획득을, 고뇌의 회피를,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의 도피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쾌락에 대한 욕망은 타인과의 투쟁에 박차를 가하고, 고뇌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며 죽음을 끌어당긴다. 그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 그들이 알고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더욱더 많은 쾌락을 좇는 것이다. 그러나 쾌락에는 한계가 있어, 그 한계를 넘으면 쾌락도 고뇌로 바뀌고 더욱더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바뀌어버린다. 진정한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뇌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이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나눠가질 수 없는, 남으로부터 힘으로 빼앗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쾌락으로 생각하는 데 있다. 남으로부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힘으로 빼앗
지난 5년간의 채널별 시청률 추이를 보면 큰 흐름이 있고 미래에 대한 예측의 단초를 제공한다. 가구시청률을 보면 2016년 대비 2021년 KBS는 5.7%에서 4.2%로, MBC는 5.0%에서 2.2%로 TV조선은 1.4%에서 2.5%로 TVN은 1.4%에서 1.6%를 기록했다.(12월 1주차 까지, 닐슨 시청율) TVN은 주시청 계층인 M세대에 X세대와 Z 세대까지 가세하면서 시청자층이 안정화된 결과다. TV조선은 트로트라는 킬러 콘텐츠 성공사례의 연장이라 보인다. 2017년 JTBC의 1/2에도 못 미치던 TV조선이 트로트의 성공과 코로나의 확산에 따라 트로트의 현장이 공연에서 TV 프로그램으로 들어오면서 예능뿐 아니라 프로그램 전방위적인 선순환효과를 만들어 이젠 JTBC를 압도한 것이다. 메인뉴스 시청률을(가구시청률) 봐도 이런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KBS가 2016년 17.1%에서 2021년 10.7%, MBC가 2016년 6.2%에서 2021년 5.2%, TV조선이 2016년 1.5%에서 2021년 5.9%, JTBC가 2016년 4.2%에서 2021년 2.5%로 나타났다. 채널별 시청률의 변화가 뉴스에도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TV조선의
-군산복합체의 등장 “맥더글러스(Mcdouglas) 없는 맥도널드(McDonald) 없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얼핏 단어와 발음도 비슷한 이 조합은 군수산업과 미국 자본주의의 대표 상징의 결합이다. 전쟁경제체제로 무장한 토대 위에서 번성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대를 일깨우는 말이다. 제국주의의 군사적 토대와 자본이 하나의 몸이 되어 움직이는 걸 보여준다. 1961년 1월 20일, 퇴임하는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TV로 중계된 고별사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최근까지 세계적 대전쟁의 과정에서 미국은 영구적 군수산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군수산업 시스템을 장착한 나라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합법적 권력도 아니며 그 권위가 인정되지 않은 영향력(unwarranted influence)에 의해 장악되고 위협받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바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다.” “군산복합체”라는 말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시작이었다. 그는 이를 가리켜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도 그런 위치를 준 바 없는 권력의 재앙적 수준의 등장이 가진 위력(the pote
주연 기주봉에게 연출자는 “이놈아, 욕하고 물 찌끄라니까(퍼부는다는 뜻) 그게 뭐냐. 웃음 터지면 코미디지 모독이냐?” 차마 입에 못 담을 욕설 더해 조진다. 여배우 조주미에게는 “연극 좋아하네. 꺼져!”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제목이 좀 있어 보였나, 신촌 76소극장 첫 공연에 표가 좀 팔렸다. 송승환 등과 소극장운동을 하던 연출가 기국서의 ‘관객모독’은 그의 의외의 똘기 폭발까지 더해 화제가 됐다. 그래도 돈벌이는 안됐다. 1978년 11월의 일. 관객이 느그들 구경하는 거 아니여, 배우가 저 사람들 바라보고 욕설 퍼부어 무참하게 하는 거야. 모르겠어? 저 사람들이 세상 뒤집어 보도록 판단의 새 계기와 경험을 주는 게 이 연극이여. 모독당하겠다고 돈 낸 놈이 웃으면 니는 사기여, 저런 도둑놈... 또래여서 가끔 들렀다. 몇몇은 통행금지 사이렌 불면 부근 내 하숙집으로 술병 품고 몰려오기도 했다. 안주는 내가 샀다. 아마 반체제(反體制)로 찍혔을 불평분자들이었다. 그게 세상에서 연극이 해야 할 역할이었다.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 ‘관객모독’(1966년 作)이라는 이 희곡으로 ‘저런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다. 2019년 ‘그 유명한’ 노벨문학상을 받으
매클루언(M. McLuhuan)은 논쟁적인 개념을 다수 제기했다. 미디어가 메시지(Medium is Message)란 통찰도 그중 하나다. 미디어 효과 이론에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메시지라는 게 정설이다. 메시지가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미디어가 메시지라니 무슨 의미일까? 미디어 학자들은 미디어가 메시지의 내용을 규정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같은 사안이라도 미디어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매클루언이 말하고자 한 바는 아니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역사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는 메시지가 아니라 미디어라는 인식이다. 이는 미디어의 역사가 증명해주는 진실이다. 현생 인류를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게 해 준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언어의 사용이다. 세이건과 드루얀이 공동 집필한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은 대체로 언어에 의한 홍보활동을 과도하게 발달시킨 자동 기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활동은 주로 그들 자신의 결함을 변명하고 약점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298쪽)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인간이라는 동물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