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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취업성공예감] 한솥도시락 배명고역점

5천만원 투자 호황 누리다 급식 시행 이후 위기직면
IMF후 맞벌이 겨냥해 전단지 홍보… 30대 고객 늘어
12년간 도시락과 동고동락 희망 안겨준 고마운 친구

꿈을 살찌우는 도시락,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한솥도시락 배명고역점 최동혁 점장

 

1990년대. 도시락 사업이 급속도록 확산됐다. 도시락이 가지는 편리성과 저렴한 가격이라는 장점 때문이다. 그 때 당시에는 한식 도시락의 평범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엔 나중에 등장한 김밥 전문점이나 우동 전문점, 초밥 전문점 등 업그레이드 분식점에게 시장을 뺏겨버리고 말았다.

한 동안 주춤하던 도시락 배달 사업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주 5일 근무제와 경기불황이 그 원인이 됐다. 편의와 실속을 선호하는 소비 트렌드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도시락 배달 전문점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새로이 등장한 도시락 배달 전문점은 과거에 비해 한층 발전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품질과 서비스, 다양한 제품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도시락 전문점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한솥도시락(www.hsd.co.kr)은 1989년에 설립, 현재 1개의 직영점과 425개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의 영업방식은 다른 경쟁업체들이 ‘배달 위주의 영업방식’을 고수하는데 비해 고객이 직접 점포에 와서 도시락을 사가는 ‘테이크아웃(TAKE―OUT)’형이다. 테이크아웃형은 도시락의 저가정책을 유지하겠다는 포석. 상품의 단가가 낮은 제품을 배달한다면 투자비용이 많아 상품의 원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솥도시락은 경우 포장판매 위주라 소규모 평형에서도 창업이 가능하다. 창업자의 입장에서는 투자비용이 적게 들어 유리하다 할 수 있다.

주방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 않은 점 역시 장점이다. 교육 이수 후 점주 본인이 주방을 맡으면 된다. 가장 지출이 큰 부분 중 하나인 인건비를 줄여 주는 요소가 된다. 주 고객층이 다양하다는 점 역시 매력으로 꼽힌다. 초등학생부터 성인 남녀까지. 호기심과 간편성으로 많은 고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측면의 장점이 있어 많은 창업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작은 규모의 매장이다 보니 점주의 홍보와 영업력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한 업종이다. 이에 따라 창업 할 때는 본인의 적성과 배달과 주방 등을 맡을 자세가 돼 있는지 먼저 생각해 봐야만 한다.

마케팅전략은 2천원 내외의 도시락을 고객이 사가도록 하는 ‘한식 패스트푸드’를 지향하고 있다. 주 고객층은 10대 후반∼20대 학생들이거나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의 20대 중반∼30대 초반의 젊은 층.

425개의 한솥도시락 가맹점들은 대학가, 중고등학교 인근, 학원가ㆍ상가ㆍ사무실 밀집지역, 대단위 아파트단지 등 주택가 등에 주로 출점해 있다. 가맹본사에서는 도시락 메뉴의 가격대비 고객 만족도를 유지한다면 출점가능 지역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본다.

다양한 고객확보를 통해 위기 극복

“12년째 도시락전문점을 운영하고 있죠. 2~3천원짜리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면서 꿈을 키우는 손님들을 보면 보람이 큽니다.”

지난 1997년 10월부터 배명중고등학교 앞에서 테이크아웃 도시락전문점을 운영하는 최동혁(49·한솥도시락 배명고역점)씨는 5천만원을 투자한 10평 규모 매장에서 하루 70~8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창업할 당시 투자금 5천만원을 전부 집 담보 대출로 얻을 정도로 나락에 빠졌었죠. 12년간 매장을 운영하면서 빚도 갚았고 자녀들도 교육시킬 수 있었으니 저에게 이 가게는 무척 고마운 존재죠.”

최씨는 매장을 오픈할 당시 실업자였다. 1990년부터 다녔던 장난감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실업자 신세가 된 것. 설상가상으로 4천만원 규모의 자금을 회사 운영자금으로 투자해서 모두 날렸다.

“눈앞이 캄캄했죠. 워낙 저가 중국산 장난감이 국내에 들어오니 가격 경쟁이 되지 않았는데 회사를 살려보기 위해서 악수를 둔 거죠.” 월 1억원 정도 매출이 오르던 회사는 최씨의 자금 수혈에도 불구하고 부도가 났다.

빚까지 안고 실업자 신세가 된 최씨는 생계를 위해 적은 자본으로 높은 매출을 낼 수 있는 창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던 중 평소 집 앞에 있는 도시락전문점의 매출이 높은 점을 눈여겨보고 본사를 찾아가 창업 의사를 밝혔다.

“당시 창업자금은 5천만원 뿐이었기에 본사와 상의해서 투자금에 입지를 맞출 수밖에 없었어요.”

배명중고등학교 앞에 보증금 1천만원에 권리금 800만원의 10평 규모 매장을 얻었다. 가맹비와 보증금, 인테리어, 집기류에는 2천600만원을 투자했다.

최씨는 결혼 전에 자동차 부품 장사를 했었다. 장사에 대한 노하우가 전혀 없지 않았기에 프랜차이즈와 개인 운영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프랜차이즈는 가맹비 등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투자금이 있어 꺼려졌었죠. 그렇지만 유망한 업종의 노하우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었습니다.”

결국 최씨는 프랜차이즈를 선택, 지난 1997년 매장을 오픈했다. 사업 초기부터 약 3년간 최씨는 배명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높은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2000년 학교 급식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최씨는 위기를 맞았다. 80%의 매출을 올려주던 학생들의 수요가 뚝 끊긴 것. 돌파구는 매장 배후에 넓게 자리한 주택가였다. 500m 내의 주택가를 1차 타겟으로 1km 내의 주택가를 2차 타겟으로 삼아 홍보를 집중했다.

“10평 남짓한 도시락전문점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홍보는 발로 뛰면서 가가호호 방문하는 전단지 작업이라고 판단하고 열심해 돌렸습니다.”

문 앞에 정성스럽게 제작한 전단지를 붙이고 고객의 반응을 살피기를 몇 개월이 흘렀다. 반응은 의외로 빨리 왔다. IMF를 거치면서 맞벌이 부부가 늘었고 집에서 밥을 해먹는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

매번 외식을 하기에는 가격적인 부담이 컸기에 자연스럽게 2~3천원에 사먹을 수 있는 도시락이 인기를 끈 것이다.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죠. 학생들에게 편중되었던 고객이 30~40대로 확대되었습니다.”

줄어든 학생들의 수요는 하교 후 학원을 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원상복귀했다. 학생층에 편중되던 고객층이 다양해지면서 수익이 안정적인 수준으로 바뀌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작은 도시락전문점이 희망을 주었습니다. 현재 600만원 정도의 수익에 아내와 가족 모두 만족하고 있습니다.” 최씨는 12년간 자신의 매장을 믿고 찾아주는 단골이 있기에 힘이 닿는 한 매장을 계속 운영할 계획이다.

<자료제공=한국창업전략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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