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7 (목)

  • 맑음동두천 23.2℃
  • 맑음강릉 23.3℃
  • 맑음서울 24.1℃
  • 맑음대전 23.6℃
  • 구름조금대구 24.4℃
  • 구름많음울산 20.2℃
  • 맑음광주 23.4℃
  • 구름많음부산 21.4℃
  • 맑음고창 21.6℃
  • 흐림제주 22.1℃
  • 맑음강화 22.3℃
  • 맑음보은 20.2℃
  • 맑음금산 21.4℃
  • 구름조금강진군 19.6℃
  • 구름많음경주시 21.2℃
  • 구름많음거제 19.1℃
기상청 제공

[문화리더] 최혜영 수원음악진흥원장

연주자에 기회를, 관객에 감동을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초대권 문화’는 건강한 공연문화를 조성하는데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운영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티켓과 팸플릿 판매를 통해 운영비를 채울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객석을 채우기 위해서든, 초대권에서 상징되는 권위의식이든 초대권 남발은 분명 개선돼야 한다.예술인들이 쏟는 열정만큼 관객 계발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주인공 지수는 세계를 누비는 피아니스트를 꿈꿔왔다. 하지만 그는 작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기 위해 조악한 전단을 벽에 붙이며 삶을 이어간다. 오랜만에 은사의 독주회장에서 만난 잘 나가는 친구들과의 해우에도 추레하기만 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 영화는 미처 발견되지 못한 음악 천재 경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 오늘날 음악계의 현실을 비춰 보이기도 한다. 애써 음악 전공을 하고도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지수가 그렇고, 자신의 천재성을 마음껏 펼쳐보이기 어려운 경민의 현실이 그렇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감동을 준 이유는 지수가 경민을 아름다움을 베풀 줄 아는 진정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는 데 있다. 평범한 사람이지만 천재 그 이상의 능력으로 가슴 속 깊숙이 울림을 준 것. (사)수원음악진흥원 최혜영 원장(50)은 음악인들의 딱딱해진 마음의 빗장을 열어주는 사람이다. 전문 연주자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돕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평범하지만 진실한 삶 속에서 영화만큼의 큰 감동을 전하는 최 원장을 만났다.

최혜영 원장은 흔한 일상 속에서 음악을 만났다고 말한다. 중학교 시절 당시 수원시민회관에서 열린 클라리넷 독주 공연이 그의 마음을 두드렸던 것.

“클라리넷 고유의 매력적인 음색과 넓은 음역을 통해 전해지는 가슴의 울림이 음악과의 인연을 맺게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영복여자고등학교에 고적대가 창단된다는 소식을 듣고 진학했다. 전공생들에게는 고적대 활동이 벅차기도 했지만 조금 더 전문적으로 음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학업에 클라리넷까지 그의 학창시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흘렀다. 대학 진학 무렵 부모님의 반대로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고, 실기시험 날 피아노 연주자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아 시험을 치르지 못했던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짧지 않은 혼란 속에서 최 원장은 플루트로 또 다른 음악 인생을 시작한다.

“다른 이들이 악기를 바꾼 이유를 굳이 물어오면 플루트가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서라고 말하곤 한다. 결혼을 한 후에 클라리넷에서 플루트로 악기를 바꿨다. 클라리넷이 남성적인 중후함을 준다면 플루트는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한다고 생각했다. 악기와 연주자로서의 나와 성격이 매우 잘 맞기도 했다. 입 모양을 통한 울림과의 타협, 복잡한 음향학적 특성 등 하면 할수록 어려운 악기라는 생각도 든다.”

최 원장은 어려움 속에서 크게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며 그의 청년기를 가볍게 설명한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한발 한발 내디뎠던 시간의 무게는 녹록지 않았을 것. 음악 속에서 당차게 이끌어온 삶은 그를 첫 독주회 무대에 서게 한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영산아트홀에서 첫 독주회를 가졌다. 여러 음악인들이 참석한 자리였기 때문에 많이 긴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대에 올라가서는 연주에만 몰입했던 것 같다. 관객의 격려와 박수가 연주자로서 나를 이끌어온 에너지고 원동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후 여러 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오던 중 최 원장은 체코로 유학길에 오른다. 그 여정 속에서 그는 체코의 청년들이 받는 국가적 지원과 사회의 인정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곤 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기회비용은 물론이고 연주 활동을 지속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현실. 음악가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지원과 문화적인 인정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음악을 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해 유학길에 오르기까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긴 시간 자신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사회로 나와서는 그간의 노력을 펼쳐보일 무대가 부족한 것은 물론 생계의 문제에 봉착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허다하다. 시·도립예술단에서 뽑는 인원은 음악 전공자의 1%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전문예술단은 지원이나 후원이 부족해 대부분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상황을 피부로 절실히 느꼈기에 수원음악진흥원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사)수원음악진흥원(MIOS)은 전문 연주자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행복하게 연주 활동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코자 2008년 설립됐다. MIOS예술단에는 오케스트라, 앙상블, 소그룹 연주팀, 예비단원 등 100여 명의 단원들이 소속돼 활동 중이다. 설립 초기부터 활동해온 전문 연주인과 엄격한 오디션으로 선발된 프로 연주인으로 구성된 민간 프로 오케스트라다. 예술단은 MIOS예술제, 수원 해피 뮤직 페스티벌, 경기도 관악 축제, 지휘자 양성 세미나, 전국 음악 콩쿠르, 해외 연주, 봄·가을 정기연주회 등 연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음악의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레퍼토리는 물론 시민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공연 기획을 통해 클래식 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단원들에게 조금 더 좋은 여건을 제공해주지 못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따른다. 단원들이 거의 두서너 개의 일을 병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회가 문화·예술인의 생계 문제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운영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전문 연주자들이 음악에 조금 더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라는 믿음은 변치 않는다.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힘이 됐던 남편의 외조와 아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지금에 이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원은악진흥원은 연간 5억여 원 이상의 운영비가 소요된다. 후원회의 지원이 조금 보태지는 것 말고는 대부분의 운영비를 최 원장 사비로 충당하고 있는 상태다. 티켓과 팸플릿 판매를 통해 운영비의 큰 부분이 채워질 수 있을 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 원장은 그 어려움의 요소 중 하나로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초대권 문화’를 꼽는다.

“‘초대권 문화’가 건강한 공연 문화를 조성하는데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지자체의 지원이 많지 않을 경우 연주단체는 팸플릿이나 티켓 판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하지만 객석을 채우기 위해서든, 초대권에서 상징되는 권위의식이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때문이든 초대권이 너무 많다. 이는 분명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예술인들이 쏟는 열정만큼 관객 계발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실례로 수원음악진흥원은 지난해 8월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렸던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의 만남’ 공연에서 전석 유료를 감행하기도 했다. 최 원장의 결단은 수익과 관객수에 상관 없이 건강한 공연 문화 정착을 위한 소리 없는 외침으로 울려 퍼지고 있는 것. 이처럼 그는 관객에서 시작해 연주자로서의 삶을 통해 전문 연주자들은 물론 음악 애호가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최 원장은 앞으로 전문음악인의 터전을 마련하는데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 말한다. 또 단원 활동의 폭을 넓혀 국제적 연주단체로 성장키 위해 연주 교류 등에 힘쓸 예정이다. “수원음악진흥원을 이끄는 일 자체가 내게는 미래”라며 당찬 포부를 밝히는 최혜영 원장. 많은 이들의 인생을 바꿔준 그의 삶 자체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진한 감동을 전한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