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8년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의류회사를 설립 후 기반이 잡기 시작한 1986년 캘리포니아 경마를 보고 흥미를 느껴 경마계에 발을 내딛었다.
마주로 출발한 조씨는 불과 4년 만에 켄터키더비에 자신의 말을 출전시켜 4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마주에만 머무는 것에 만족하지 않아 아예 조교사와 마필 생산자까지 겸업, 지난 2008년에 이어 최근에도 ‘러브더웨이유아’가 우승, 그레이드 원(최고등급의 경주)을 두 번이나 제패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조씨는 생산자로도 명성을 높였다.
1997년 킨랜드 경매시장에서 ‘스콜린다’란 암말을 구입하면서 시작한 생산 활동은 이후 ‘스트리트 히어로’ 등 많은 명마를 배출했다.
그가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지난해 켄터키더비 유력 우승마인 ‘프리미엄 페가수스’가 갑작스런 부상으로 은퇴한 부분이다.
그는 “가족들과 직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존재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