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詩산책]회색양말

2012.11.29 19:59:51 13면

 

회색양말을 신고 나갔다가 집에 와 벗을 때 보니

색깔이 비슷한 짝짝이 양말이었다.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것인가.

비슷하면 무조건 똑같이 읽어버리는 눈.

작은 차이를 일일이 다 헤아려보는 것이 귀찮아

웬만한 것은 모두 하나로 묶어버리는 눈.

무차별하게 뭉뚱그려지는

숫자들 글자들 사람들 풍경들 앞에서

주름으로 웃는 눈.

웃음으로 얼버무리면 마냥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

이젠 아무래도 좋단 말인가.

빨래바구니에 처박히자마자

저마다 다른 발모양과 색깔과 무늬와 질감을 버리고

빨랫감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양말들.

- 시집 ‘껌’ / 2009 / 창작과 비평사 -

/김기택

 

 

 

다르다는 것은 ‘같다’라는 조건을 전제로 한다. 그 조건이 짝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짝, 짝이 짝을 이룰 때 ‘비슷’해진다는 것은 시인의 두 ‘발’이 오른발과 왼발의 짝을 이뤄 걷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두 발이 균형을 이루며 걸었던 “비슷함”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고마울 일이다. 이것이 어떻고 저것이 어떻고,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인 구별과 “차이”를 둘 만큼 세상은 느긋하지 않다. 때론 “뭉뚱그려지는” 삶 속에서 함께 “무차별” 빨랫감으로 서로가 서로를 껴안을 필요도 있다.

/권오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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