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 요즘 젊은세대 꼭 기억해야”

2013.02.28 21:22:00 1면

3代 독립운동 오희옥 애국지사
할아버지, 항일의병 활동 아버지, 만주서 무장투쟁 14살부터 독립운동 참가
“일본 독도침탈 노리는데 3·1절 기념식 열리지만 젊은이 참여 줄어 아쉬워”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없었을 꺼야. 요즘 젊은이들이 꼭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할텐데.”

‘대한독립 만세’. 94년 전 오늘 전국 방방곡곡 울려퍼진 한마디. 남녀노소 너 나 할 것없이 민중 모두가 밖에 나와 만세운동을 펼친 그날. 일제 강점기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3·1절은 공휴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3대가 항일운동을 하고 꽃다운 나이에 독립활동에 참여한 애국지사 오희옥(86) 할머니를 3·1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만나 순국열사의 정신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독립운동하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을 일찍 떠나 중국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지냈어”라고 말문을 연 오 할머니는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아버지와 헤어지고, 나와 언니는 청년공작대에 들어가 공연하면서 중국군과 한국 청년들을 도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3대에 걸쳐 항일운동을 펼친 탓에 오 할머니 가족은 이동이 잦았다. 북경부터 천진, 남경, 장수, 유주에 이르기까지 중국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녀야만 했다. 오 할머니는 14살이 되던 1939년 중국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언니와 함께 입대했다. 2년이 지난 1941년 청년공작대가 광복군에 편입되면서 아동교육과 가도선전 등 항일운동을 본격화했다.

오 할머니는 “할아버지는 을사조약 때 의병 수백명을 이끌고 일본 경찰 수십명을 해치울 정도로 용맹했고, 아버지는 만주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도 지냈다”면서 “김좌진 장군과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치르며 일본군을 전멸시켰어”라며 아버지 사진을 보며 그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 할머니의 아버지인 오광선 장군은 20살에 만주로 이동해 김구 선생의 심복으로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참여하는 등 일선에서 독립활동을 펼쳤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오 장군은 가족과 8년간 헤어져 지냈다. 이런 상황에도 어머니는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해 한국광복군을 지원했고, 언니와 형부는 광복군에 가입해 최전방에 나서는 등 가족 모두가 어려움 속에서 나라를 되찾고자 힘썼다.

“3·1운동이 없었다면 독립이 없었을지 몰라”라고 밝힌 오 할머니는 “지금 일본놈들이 독도를 뺏으려고 안달인데 후손들이 독립 당시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잊어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오 할머니는 “전국 곳곳에서 만세운동 재현행사와 3·1절 기념식이 열리지만 젊은 사람들의 참여는 점점 줄어든다”며 “후손들이 역사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태양 기자 taeyang@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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