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식 전 보라고 교장

2013.07.11 16:22:35

 

‘불광불급(不狂不及)’. 우리말 사랑에 빠진 백문식(63) 전 용인 보라고 교장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그는 교직에 있는 동안 5권의 서적을 발간했다. 길게는 8년 이상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 국어 관련 전문서적들이다. 그렇다고 교사 신분을 등한시한 것도 아니다. 전국 모의학력고사 출제위원장, 경기도 교사 임용고시 논술 출제위원장을 역임한 것은 물론 교사를 대상으로 한 우리말 바르게 사용하기 강의 등도 펼쳤다.

지난 6월 말, 그런 그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정년을 앞두고 지난해 9월 출간한 ‘우리말형태소사전’이 문광부의 최우수 권장도서로 선정된 것이다. 형태소와 관련된 사전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이 책이 처음이다. 두께만도 1천200여 쪽에 이른다. 백 전 교장이 여러 해를 준비하며 출간한 야심작이 언어분야 최우수 권장도서로 인정받은 것이다. 우수학술 도서로 선정된 ‘우리말 부사 사전’에 이은 두 번째 경사다.

이처럼 ‘우리말’을 사랑하는 교사로서 ‘우리말’을 알리고,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백 전 교장을 만나 그동안 전문서적을 집필하게 된 계기와 앞으로 집필을 계획한 책은 어느 분야인지 물었다.

교직 생활을 한 지 어느덧 30여년이다. 올해 초 은퇴하여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백 전 교장은 스스로의 시간을 책에 쏟아 붓고 있다. 처음부터 그는 국어, 즉 ‘우리말’에 관심이 많았다. 국어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우리말을 좀 더 쉽고 구체적으로 가르칠 방법이 없는지 생각하다가 책의 출판을 마음먹은 그는, 하나하나 공부하며 자료를 찾는 등 집필 작업을 하다가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한다.

교장이라는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학생들을 대하며 학생들의 상담을 들어주고 흡연하던 학생들을 졸업할 때는 비흡연자로 이끌었을 정도로, 백 전 교장은 사랑과 엄격함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해왔다. 이런 그였기에, 학생들에 대한 마음이 그가 책을 집필하는 첫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그가 쓴 책은 1998년 집필한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다. ‘어원’이라는 것은 말의 뿌리를 찾는 것이기에, 이 책은 어원에 대한 설명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어 그는 ‘우리말 파생어 사전(2004)’ ‘우리말 표준 발음 연습(2005)’ ‘우리말 부사 사전(2006)’ 등을 집필하고 마지막으로 지난해 9월 마침내 ‘우리말형태소사전(2012)’을 출판했다.

특히, ‘우리말 부사 사전’과 ‘우리말형태소사전’은 둘 다 문화관광부 우수학술 도서에 선정됐을 정도로 훌륭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백 전 교장의 여러 책들 중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와 ‘우리말 부사 사전’은 개정판을 한 번 더 냈을 정도로 평가가 좋았으며, 최근에 출간된 ‘우리말형태소사전’도 개정판을 앞두고 있다.
 

 

 


교사로서 책을 쓰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물리적인 시간은 물론 연구라는 명목 하에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도 없고, 참고할만한 서적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기에, 대학에 다니는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참고 서적을 구해 보면서 공부하고 연구해야 했다. 특히, 한 가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겹가지를 쳐서 여러 가지의 말이 나오는 ‘파생어’의 경우, 연구논문과 관련 서적을 참고해 파생어를 정리한 후 사전에서 일일이 찾으며 책을 썼을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 전문 서적이라 상업성이 없어 출판사를 구하기가 힘들 때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대학 교재를 발행하는 출판사의 도움으로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여러 책 가운데 ‘우리말형태소사전’은 백 전 교장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서적임과 동시에 그의 야심작이다. 그는 “그동안 여러 책을 집필하면서 정리해오고 연구한 과정들은 ‘우리말형태소사전’을 이끌어내기 위한 절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이러한 과정 외에도 8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이 책을 탄생시켰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말형태소사전’은 일반 국어사전의 전형적인 틀을 따르되, 낱말 위주가 아닌 형태소(形態素)를 올림말[표제어]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우리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폭넓은 사고와 바르고 아름다운 언어생활을 위한 어휘력 증진에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는 그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낱말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어휘력 증진과 언어 활용 능력 향상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말’을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그에게도 안타까운 점은 한둘이 아니다. 그는 과거 일본에 있는 서점에서 사전의 종류가 많은 것을 보고 우리나라와 비교되어 속상함을 느꼈다고 언급했다. 백 전 교장이 쓴 부사사전과 형태소사전이 우리나라에서 ‘부사’와 ‘형태소’라는 소재로 처음 쓰인 사전이라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의 사전 종류는 많지도, 다양하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백 전 교장은 “요즘에는 사투리와 지역 방언들을 소재로 지역어 사전이 나오고 있는데, 이렇듯 지역어를 살리는 것 또한 참 반가운 일”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사전을 집필하는 것이 내 목표”라고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언어에 대한 정책이 강하지 않다. ‘우리말’이 민족의 얼이라는 백 전 교장은, 우리나라가 국립국어원이 있음에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번에 있었던 FTA 문서 오류 사건만 봐도 그래요. 이는 국가적 망신입니다. 전문가와 충분히 검토하고 상의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에서도 정책적으로 관여를 해야 합니다. 언론도 이에 동참하면 더 좋고요.”

백 전 교장에게는 현재 진행 중인 일도 많고, 계획하고 있는 일도 많다. 현재 그는, 우리나라 헌법에 나오는 어려운 단어들을 정리해 쉽게 풀어내는 일과 제대로 된 어원사전을 만드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이 작업의 결과물들은 각각 제헌절(7.17)과 한글날(10.9)에 맞춰 출판될 계획이다. 이 외에도 교직생활을 하며 쌓은 노하우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교사론을 써보고 싶다는 그는, 이어 ‘우리말’에 관해 계획하고 있는 일까지 이야기했다.

“‘우리말’도 안 쓰면 죽고, 변화하듯이, 다음에는 ‘죽은 말’들을 사용해 소설을 한 번 써볼까 합니다. 이 외에도 ‘우리말’을 위해서는 아직도 할 일이 참 많아요.”

 

백미혜 기자 qoralgp9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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