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믿습니다

2014.09.11 21:15:27 16면

 

입만 열면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말을 달고 사는 여자가 있었다. 하도 입버릇처럼 말을 하기에 그러면 본인은 믿을 사람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 말이 거북했던지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아진 목소리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눈빛 또한 강렬했다.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탐색 하는듯한 눈길이 부담스럽고 머쓱했다.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찾아왔다. 사실 자기는 계를 하는데 조건이 좋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 끼어주는데 한 사람이 빠져서 그런다며 자신의 신용과 높은 이자를 강조하며 남자 모르게 목돈 만드는 방법으로 최고라고 간곡하게 권했다. 나는 원래 사금융의 폐단이나 그로 인한 후유증을 보아온 터라 적당한 이유를 대며 거절 했다. 그날 이후 몇 차례 연락이 왔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며 끝을 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그 일을 잊을 즈음 차를 바꾸고 외모가 눈에 띄게 달라진 여자의 모습을 전해 들었다. 그 뿐 아니라 자녀들을 호주로 유학 보낼 예정이라는 말과 언덕배기 허름한 집에서 평수가 넓은 신축 건물로 이사할 계획이라는 말도 들렸다. 나는 내심 남편에게 미안했고 괜히 주눅이 드는 것만 같았다.

아니 그래야 마땅할 것 같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비지땀을 쏟아내게 하던 더위도 힘이 빠져 코스모스가 피고 멀리 산 능선이 안개에 묻혀 늦잠에 빠진 사이 포도송이들은 단 맛을 채우고 그 여자는 돈이 급한 사람에게 무엇이나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전능하신 분이 되어 있었다.

추석 다음 날이면 목욕탕이 붐비고 한증실은 초만원이었다.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쪼그리고 앉으니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르다. 대개는 그런 장소에서는 가볍게 웃고 지나가는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그날은 심상치 않은 얘기를 낮은 소리로 하고 있었다. 누구네 가게가 며칠 문을 닫고 있더니 주인이 바뀌었고 누구네 집 여자가 집을 나갔고 또 누구네 집은 이웃이 떠나갈 정도로 큰 소리로 부부싸움을 하더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가 그 전능하신 여자의 차가 자주 서 있던 집이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곗돈으로 고리채를 했고 날짜를 어기는 계원들에게는 주변에 남편 모르는 비자금, 소위 딴 주머니를 차고 있는 사람들에게 은행에 넣어봤자 이자도 몇 푼 안 되니 힘 안 들이고 돈을 늘려주겠다고 빌려 계원들에게 높은 연체이자를 물게 하는 방법으로 많은 수입을 올렸다.

계원들은 꼼짝 못하고 복리로 계산 되는 이자를 감당했다. 울며 겨자 먹는 격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사람 중 하나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져갔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의례히 그 얘기부터 했다. 무엇이나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던 여자는 속수무책이었고 계는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오억이라느니 이십억이 넘는 큰돈을 혼자 해 먹었을 리 없다느니 소문만 무성했다. 결국 전능함을 상실한 여자는 죄수의 복장을 하고 면회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설날이 다 되어 가는데 얼굴이라도 한 번 보자고 찾아 간 그 자리에서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하던 말이 떠오른다.

“조금만 더 믿고 기다려 주었으면 다 해결했는데 결국 믿음이 부족한 탓에 일을 다 망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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