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시민정치와 정치인의 자질

2016.12.14 18:50:10 인천 1면

 

지난주 국회는 대통령 탄핵을 의결했다. 한 나라의 대표적 정치인인 대통령이 그를 뽑아준 국민의 뜻에 의해 자리를 내 놓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한 정치인의 몰락은 개인의 실패에 그치지 않는다. 더구나 그가 대통령이라면 오죽하겠는가? 정치인이 갖춰야 할 자질의 부재에서 비롯된 비극의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미친다.

열정, 책임감, 균형의식. 베버는 정치인의 자질로 이 세 가지를 꼽았다. 얼마 전 기자인 어느 선배가 이 ‘베버명제’를 인용해 정치권에 조언하는 칼럼을 썼다. 어수선한 시국 탓인지 그 칼럼이 유난히 눈에 밟혀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구해 읽었다. 베버는 국가의 전제조건으로 악마적 폭력성을 내재한 물리적 강제력을 꼽았다. 남용되거나 오용된 물리적 강제력은 폭력과 다르지 않다. 유권자는 선거를 통해 물리적 강제력의 사용을 정치인에게 맡긴다. 베버는 물리적 강제력이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정치인에게 세 가지 덕목을 요구했다.

지난 주 탄핵 의결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은 이 덕목들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난 4년 동안 국가와 국민을 향해 그가 보여준 어떠한 열정도 기억나지 않는다. 대의를 향한 헌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책임감은 또 어떤가? ‘나는 책임 없고 특정 개인이 잘못했을 뿐’이라는 식의 ‘유체 이탈’ 화법과 반복되는 변명에 국민은 절망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실종된 균형의식이다. 베버는 ‘거리감의 상실’을 정치인의 가장 큰 죄로 단정한다. 국가 운영의 책임을 진 정치인이 주변 사람과의 거리감을 상실함으로써 무능의 극치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한다. 거리감의 상실, 공사 구분의 망각이 국정 문란을 초래했다. ‘1+1 대통령’이라는 한 시민의 일갈은 상실과 망각의 행태를 절묘하게 표현했다. 애당초 그들만의 놀음에 대의를 향한 열정도 냉철한 균형감각도 있을 자리는 없었다.

다행히도 그 자질을 국민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열정, 책임감, 균형의식을 두루 갖추고 정치가 위기로 몰고 간 나라를 살리고자 나섰다.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와 민주주의를 구하려는 촛불을 밝힌 것은 대의를 향한 헌신이고 열정이었다. 거리를 메운 이들을 떠민 힘은 책임감이었다. 대통령이 ‘나는 모른다.’고 할 때, 국민은 나서서 ‘내가 책임지겠다.’고 외쳤다. 더 놀라운 것은 균형의식이다. 정치가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준 것도, 경찰버스에 오른 시민을 내려오게 함으로써 물리적 강제력이 폭력으로 변질되는 구실을 막은 것도 국민이었다. 시민의 정치적 자질이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열정적이지만 질서 있는 집회를 이끌어 왔다. 열정, 책임감, 균형의식을 두루 갖춘 시민의 정치가 나라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루소가 말했다. “국민은 섬기기 위해 지도자를 선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선출했다.” 국민은 그들을 대리할 정치인을 선거로 뽑는다. 선출된 정치인은 국민의 뜻을 대리할 정도의 권한 만을 위임받는다. 그러나 많은 정치인은 선출과 동시에 국민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 든다. 지도자를 뽑았는데 지배자가 되려하는 것이다. 정치인의 자질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정치인이 사실상의 정치적 유폐에 처해졌다. 그는 국회 의결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차분하고 담담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국회는 대리했을 뿐이고 탄핵은 국민이 했으니 국민과 싸우겠다는 셈이다. 아직도,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혹은 일부 불순 세력이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인식에 머물러 있다면 일시적 유폐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고립과 고독에 갇힐 수도 있다. 탄핵 의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민의 정치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로잡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은 행복하다. 대통령이 하나도 갖지 못한 자질을 유권자가 모두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정치인은 거리의 멘토에게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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