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횡단보도

2017.08.22 19:12:31 16면

 

횡단보도

/이훤

오늘도
쏟아지는 비는 피아노를 치네

보도를 때리고 깨끗한 선율 튕기며

수없이 연주되는 흑과 백, 같은 표정은 없었네

종일 건반 위를 횡단하면서
자신이 음계가 되는 줄
모르는 사람들

듣게 될까

다 다른 걸음의 연주처럼
너와 나 얼마큼 고유한 노래인지

- 시집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횡단보도가 피아노라니. 횡단보도를 얼룩말이라고 표현한 시를 읽은 적은 있으나 건반으로 표현한 시는 처음 읽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시각적으로 보아도 얼핏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시인은 단순히 횡단보도를 피아노 건반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횡단보도에 내리는 빗줄기까지 시의 질료로 쓰고 있다. 그러므로 고정된 건반 위를 지나는 모든 것들에게 고유의 음계를 지닌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자신은 분명 어떤 음가(音價)가 있는데도 그걸 모르고 사는 우리는 모든 것을 헛되이 지나치고 마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횡단보도는 단순한 어떤 줄이 아닌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생업의 걸음으로 어떤 이에게는 만남, 또는 헤어짐의 걸음으로 때로는 탄생이나 죽음의 걸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횡단보도를 지나는 나는 지금 어떤 음계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정원 시인

 

경기신문 webmaster@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수원본사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영일로 8, 814호, 용인본사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974-14번지 3층 경기신문사, 인천본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인주대로 545-1, 3층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경기, 아52557 | 발행인·편집인 : 표명구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