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베롱나무꽃 그 불편한 진실(An tragedy of the commons)

2017.09.19 20:20:17 인천 1면

 

또 한 번 계절의 경계에 이르렀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면 추운 날씨에 곧 황량해질 나무에 괜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때 가장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으니 붉게 피는 아름다운 꽃, 바로 베롱나무다. 조금은 밋밋한 늦여름의 풍경 속에서 그 붉디붉은 빛깔은 확실히 돋보인다. 이처럼 꽃이 귀한 9월에 꽃이 피는 수종은 무궁화, 나무수국, 능소화, 베롱나무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백미는 단연 베롱나무 꽃이라 생각한다.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라서 모습은 비교적 눈에 익은 반면 그 이름은 조금 낯선 베롱나무는 흔히 백일홍이라 불리우며, 나라꽃 무궁화와 함께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기도 하다.

백일홍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멕시코 원산인 초본성 국화과 백일홍으로 주로 화단에 많이 심고, 또 하나는 목본성 부처꽃과로 나무백일홍 즉 배롱나무로 자미(紫薇)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 강희안이 지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배롱나무 꽃의 품격을 높이 평가하여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第) 가운데 6등급으로 기록하였다. 베롱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전 세계 50여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붉은색, 분홍색, 흰색, 보라색 등의 꽃을 여름 내내 화려하게 피운다. 특징적인 점으로는 백일동안 꽃이 피어있다는 것인데, 사실 꽃 한 송이가 백일동안 피어있지는 않고 열흘간 피었다가 진다. 하지만 한 가지에 매달린 수백 개의 꽃이 하나씩 피었다가 지기를 반복하면서 마치 백일 내내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꽃은 먹기도 하며 나무는 재질이 강하고 튼튼해서 세공용 재료로 많이 쓰인다. 줄기차게 이어지는 긴 개화기간은 영원한 생명을 염원하는 의미로 무덤가에 많이 식재하는 식물이기도 하다.

베롱나무는 특히 선비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나무로 사육신 중 한 분이신 성삼문은 “지난 저녁 꽃 한송이 지고,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피어, 서로 일백 일을 바라보니, 너를 대하여 한 잔 하리라”는 시까지 남기고 있는데, 한여름의 푸르름 속에 진분홍으로 붉게 핀 꽃은 고결한 선비의 학문 향한 열정이 머물 수 있는 절실한 대상이 되기도 했다.

베롱나무꽃이 세번 피면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옛 어른들이 말씀하셨는데 이는 벼를 심어 삼개월이 지나면 추수를 하여 햇쌀밥을 먹기 때문이어서 화려한 봄꽃의 향연과 온 산하가 울긋불긋 타오르는 가을 단풍을 이어주는 고마운 꽃이 베롱나무꽃이기도 하다. 베롱나무는 이름도 많은데, 줄기의 하얀무늬를 살살 문질러 보면 가지가 흔들리는 그 모습이 마치 간지럼을 타는 것 같다고 하여 ‘간지럼나무’라고 한다. 이를 보고 충청도에서는 ‘간즈름나무’라 부르며, 제주도에서는 ‘저금 타는 낭’이라고 부른다. (제주어로 저금은 간지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수피가 매끄러워 원숭이도 미끄러진다하여 ‘원숭이 미끄럼 나무’라고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베롱나무는 수피가 얇아서 추위에 약하여 이전에는 주로 충남 이남지역에서만 식재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산림식생대의 변화로 경기도 지방에서도 잘 자란다. 아름다운 베롱나무 꽃이 지구온난화의 산 증거인 셈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의하면 지난 60년 동안 남방계 나비 10종 서식지의 북방한계선이 해마다 1.5㎞씩 북쪽으로 이동했는데, 이는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 등온선이 해마다 1.5㎞씩 북상하는 속도와 일치하는 것으로 한반도 지구온난화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물론 베롱나무와 비슷한 조건에서 서식하는 대나무와 감나무도 베롱나무의 꽁무니를 바쁘게 쫓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한반도 식생대의 심각한 현실이다.

붉은 빛의 아름다운 자태를 남부지방까지 직접가지 않고 사무실 창밖으로 감상할 수 있는 건 눈에는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남부지방에서 자라야할 수종이 중부지방에서 자라고 있는 불편한 진실(An tragedy of the commons)을 생각하면, 그 아름다운 꽃을 보는 마음이 가끔은 불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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