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허물

2017.09.26 18:58:30 16면

허물

/차성환

허물어지는 허물을 볼 수 있다면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불에 일그러지는 나의 살과 피부 뼈와 불꽃 내가 허물어지는 나를 볼 수 있다면 뜨겁고 차갑고 내가 모르는 생의 온도로 허물을 벗는 곤충의 이야기처럼 벗으라면 벗겠어요. 나는 그만 허물어지고 발목과 무릎과 허리가 흐무러져 척추는 자긍심을 잃고 허물이 안 되게 발악해 봐도 허물밖에 되지 않고 어제의 허물을 벗고 허물을 찢어 허물은 나의 몸인데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쓰레기 더미 사이에 허물어지는 허물이 가장 아름답고 허물을 벗을 수 있게 허물에게 허물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나는 허물과 결혼해 허물을 낳고 허물이 잘 커서 큰 허물이 되고 나보다 더한 거물도 속물도 아닌 허물이 되어 나를 허물뿐 나는 헛물만 켜고 허물은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고 허물 속에 싹튼 허무와 신물과 허수아비를 껴안고 겉이 속이 되고 속은 겉이 되는 허무를 허물뿐

 

 

 

차세대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매우 성실한 시인이다. 허물은 허물어진다는 이미지와 어울려 부정적인 뜻이 될 수 있다. 허물없는 사람이 없다는 말, 허물은 한 사람의 단점이거나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서 가지게 된 얼룩을 말하기도 한다. 또 다른 의미는 허물을 벗는다는 말로 껍질 또는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큰 세계로 나가간다는 긍정적인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시인이 허물이란 시에서 허물을 끝없이 말한다는 것도 허물인데 시인은 허물에서 허무 헛물 등 파생되는 말로 때로는 허물뿐인 말로 시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사색의 발화현장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시가 재미도 있고 진지하다. 친근한 주제를 가지고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시를 쓰는 젊은 시인에게 나도 모르게 갈채를 보내게 된다. /김왕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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