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서당비

2017.10.16 18:33:18 16면

 

요즘은 하늘 보는 재미로 산다. 파란 하늘에 떠도는 구름은 온갖 모양을 만들어주며 나를 부른다. 새벽안개 속에 잠든 산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하면 하늘엔 호주의 목장보다 더 많은 양떼가 지나간다. 잠시 지나면 어느새 새털구름이 흩날리고 조금 있으면 천사들이 단체로 이불빨래라도 하는지 솜뭉치 같은 구름덩이가 탐스럽게 피어오른다. 어떤 구름은 돌고래 모습이고 또 어느 구름은 아늑한 해안선을 그리기도 한다.

파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하는 사이 자박자박 가을은 우리 곁으로 오고 나무는 제각각의 빛깔을 드러내기 위해 분주하다. 이제 구름보다 더 고운 빛깔로 치장을 하고 올해의 마지막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밤잠을 설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싸리나무는 다른 활엽보다 단풍이 일찍 든다. 우리 동네에서는 붉나무가 가장 빨리 단풍이 들고 은행잎은 테두리부터 금빛물이 들기 시작하고 싸리나무의 동그란 잎에 노르스름하게 물이 들면 곁에서 억새꽃이 흔들린다. 싸리나무 잎이 갈색으로 짙어지고 꼬투리가 단단하게 변하면 가을걷이를 서두른다. 곧 서리가 내리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공동주택보다 단독 주택이 많아 당연히 마당이나 골목길을 쓸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필요한 것이 싸리비였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나면 산으로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하러 가기도 했지만 싸리나무를 베어다 비를 맸다. 그것도 일 년치를 한 번에 만들어 두고두고 쓰고 노인이나 여자들만 사는 집에 주기도 했다.

간혹 어떤 집에서는 베어 온 싸리를 다 비로 만들지 않고 곧고 잘 자란 싸리를 골라 한 아름 단으로 묶어 서당으로 가지고 갔다. 훈장댁에 싸리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 자식 잘 가르쳐 달라는 뜻이었다. 태도가 불성실 하거나 가르치는 대로 따라오지 않으면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자식을 잘 가르쳐 달라는 부탁의 말을 담고 있었다. 훈장님의 회초리에 집에 가서 울고불고 하며 일러바칠 아이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해도 사랑의 매에 감히 이의를 제기할 부모는 없었다.

서당에서 그 많은 싸리나무가 다 회초리로 쓰일 리는 없다. 남은 싸리나무를 싸리비로 만들어 장에 내다 팔면 서당비라고 해서 대개는 학부모가 다시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사갔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자식 교육을 위해 힘썼다.

소리도 죽이고 엄마는 아이의 귀가를 기다리며 거실에서 날밤을 새고 혹시라도 신경 거슬릴까 말도 제대로 못 붙이고 산다. 우리나라에는 삼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산에는 산삼, 바다에는 해삼 집에는 고삼이 있는데 이 세 가지 중에 고삼이 제일 비싸다는 얘기다.

내가 어린 시절에만 해도 자식이 입학을 하면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가서 선생님께 하는 인사가 대개 사람 좀 만들어 달라는 말이 인사였다. 부모는 아이를 낳고 사람으로 기르는 것이 선생님이라고 해서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 정도로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방학기간 중에 선생님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세상이 하도 많이 변해서 이건 아니다 싶어도 그냥 지나가게 된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 교육의 위기를 실감하게 된다.

회초리로 쓰일 싸리나무를 베어다 주고 서당비를 사오던 부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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