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유골항아리에서 나온 모래

2017.11.09 18:42:02 16면

 

유골항아리에서 나온 모래

                               /파울 첼란

망각의 집은 곰팡이 슨 초록빛.

나부끼는 문마다 너의 머리 없는 악사가 푸르러진다.

그는 너를 위해 이끼와 쓰라린 치모恥毛로 만든 북을 울려 주고

곪은 발가락으로 모래에다 너의 눈썹을 그린다.

그것이 달려 있었던 것보다 더 길게 그린다. 또 네 입술의 붉음도.

너는 여기서 유골 항아리를 채우고 네 심장을 먹는다.

- 파울 첼란시집 ‘죽음의 푸가’ / 민음사


 

아무리 읽어도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시를 먹는다. 아프다는 것으로는, 인간의 통점으로는 느낄 수 없는 저 너머를 읽는다. 디디 위베르만이 아우슈비츠를 다룬 영화 ‘사울의 아들’을 왜 괴물이라 했는지 끔찍하게 느끼는 새벽이다. 우리는 분단이 되어있고 지구 최후의 휴전 중인 나라이다.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지나 전쟁까지 겪으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학살당하고 이 아픔을 깨트리려 몸부림치고 고문당하고 죽어갔는가. 시인은 아우슈비츠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는 누구인가 나이고 또 우리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저 광화문의 촛불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시 살아난다. 그러나 왜 시인은 센 강에 몸을 던져야했을까 나도 먹어야한다. 죽어간 수백만의 동족들을 그 심장을, 그런 시를 써야하는데 왜 못 쓰는가 부끄러운 새벽이다.

/조길성 시인

 

경기신문 webmaster@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수원본사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영일로 8, 814호, 용인본사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974-14번지 3층 경기신문사, 인천본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인주대로 545-1, 3층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경기, 아52557 | 발행인·편집인 : 표명구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