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도시의 미래유산,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해야

2018.01.17 19:08:08 16면

 

얼마 전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기습적인 한파가 찾아온 적이 있다. 불청객의 방문에 시민들의 일상생활에는 크고 작은 불편이 발생했지만, 군포시를 아늑하게 감싸는 수리산은 더욱 강인한 자태로 서있었다. 그 강인함 속에는 아마도 땅 속 비좁은 곳을 끊임없이 파고들었던 굳건한 뿌리의 생명력이 담겨 있었으리라.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도 튼튼하게 잘 자라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진리를 우리는 때로는 쉽게 잊고 산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보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우리의 삶에 변화의 시그널을 가져다 줄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가치 있는 것일수록 우리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더욱 분명하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시장경제 원리를 풀어냈으며, 뉴턴은 보이지 않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는 어떠한가? 눈에 보이는 유형문화재는 많은 관심 속에 보존이 잘 이뤄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무형문화재는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전수자 또한 찾을 수가 없어 계승할 수 있는 맥마저 끊기고 있는데, 지난 2012년 별세한 1인 창무극(唱舞劇)의 대가 공옥진 여사가 대표적이다.

군포시에도 전승의 맥을 이어나가야 할 소중한 무형문화재가 있다. 바로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0호인 김문익 장인이 만드는 ‘방짜유기’다. 유기(鍮器)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그릇으로 제작 기법에 따라 방짜, 주물, 반방짜로 나뉘는데, 방짜유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질 좋은 유기로 꼽힌다.

군포의 방짜유기는 불에 달군 놋쇠를 망치로 두드려 만들어 조직이 치밀하고 변형이나 변색이 적다. 또 망치자국이 은은히 남아 있어 수공예품의 멋 또한 오롯이 살아 있다.

특히 구리와 주석의 합금 비율을 72% 대 28%로 정확히 맞추기 때문에 소리가 맑고 울림이 오래가 징·꽹과리 등 풍물악기에 많이 쓰인다. 김덕수 사물놀이패도 이용했을 만큼 국악인들 사이에서 최고로 통하고 있는데, 그 속에는 김문익 장인을 비롯해 굳건히 계승·발전시켜 온 보이지 않는 무형문화재들의 오랜 숨결이 담겨 있다.

군포시는 그 숨결을 전달하고자 ‘방짜유기 전수교육관’을 건립, 오는 5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많은 무형문화재들이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전수자를 찾지 못해 소멸돼가고 있는 이 시대에 군포의 ‘방짜유기 전수교육관’이 작지만 강한 경종을 울려보길 기대한다.

비단 방짜유기뿐만이 아니다. 청동기시대부터 대를 물려 이어 쓰던 유기(鍮器)처럼 군포시에는 수백 년이 흘러도 우리의 자녀들에게 반드시 물려줘야 할 숨은 미래유산이 도시 곳곳에 퍼져있다. 바로 ‘책’이다.

놀라운 것은 20여 년간 ‘아이들은 도시의 미래이자 나라의 미래’라는 소신으로 추진해 온 ‘책나라 군포’가 2014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책의 도시 제1호’로 지정되고, 더군다나 최근 2018년 대한민국 소비자들이 선택한 최고의 ‘문화도시 브랜드’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 한 해 군포시는 시민 누구나 손만 뻗으면 책을 접할 수 있는 독서인프라와 참신하면서도 트렌디한 독서콘텐츠를 바탕으로 독서문화 창작을 통한 새로운 도시의 미래유산을 준비해나갈 것이다.

책 테마관과 지역작가 창작촌, 평생학습센터, 생활문화센터 등 책 주제의 복합 문화공간인 ‘책마을 조성사업’을 올 상반기 완공해 ‘책나라군포’를 한층 업그레이드하며, 24년 간 용도 폐지된 낡은 배수지를 창작과 생산의 공간으로 재생시키는 ‘그림책박물관공원 조성사업’은 2020년 조성을 목표로 본격 진행할 계획이다.

대를 물려 이어 쓰던 유기(鍮器)처럼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반드시 전승의 맥을 이어나가야 할 도시의 미래유산. 이제는 보이는 것보다 나와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의 숨결로 굳건히 이어 줄 보이지 않는 것들의 진정한 가치에 보다 주목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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