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룡문]아르헨티나 교훈

2018.09.06 19:08:49 16면

여배우 출신의 ‘에바 페론’은 영부인 시절, 아름다운 외모와 확신에 찬 연설로 아르헨티나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집권 이후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여성의 지위 향상, 임금 인상 등 파격적인 정책을 펼쳐 ‘국모’라는 칭송까지 들었다. 그러나 선심성 복지정책에 따른 폐해는 아르헨티나에 포퓰리즘의 대명사인 ‘페로니즘’이라는 멍에를 씌우고 말았다.

역대 정부마다 페로니즘의 계승자를 자처하며 자본 통제를 실시하고 국영화에 열을 올렸다. 해마다 연금을 대폭 인상하는가 하면 전기도 공짜로 공급했다. 페론이 죽어도 페로니즘 신앙은 여전히 아르헨티나를 망령처럼 지배했던 셈이다. 하지만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나라 곳간이 텅텅 비고 물가는 폭등했다. 결국은 2001년 말 아르헨티나 도심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가 상점에 무단 침입해 닥치는 대로 생필품을 약탈하는 폭동 사태가 빚어졌다. 페소화 가치가 폭락하고 은행예금마저 마음대로 쓰지 못하자 참다못한 사람들이 폭도로 돌변한 것이다. 정부는 비상사태와 함께 대외채무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했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522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과거의 반성 없이 위정자들은 여전히 분수에 넘치게 살았다. 대통령이던 남편에 뒤이어 당선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2007∼2015년)은 분수를 몰랐던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재임기간 중 경제가 수렁으로 곤두박질쳤음에도 학생들은 공짜 노트북을 지급받고, 연금 수급자는 360만 명에서 두 배 넘게 불어났다. 최근 통화가치가 급락한 아르헨티나가 IMF에 구제금융을 다시 요청했다. 벌써 13번째다. 2015년 집권한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페로니즘과의 결별을 선언했지만 보조금 삭감과 공공요금 인상에 반발하는 여론에 밀려 개혁노선을 점차 완화해야만 했다. 페로니즘이 남긴 무분별한 복지라는 위험한 유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경에 빠진 것이다. 늘어난 복지 예산 대부분을 세금으로 충당 하려는 우리의 국정운영을 보며 지구촌 먼 나라 사정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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