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빙하지대를 가다

2018.11.15 19:57:00 16면

 

 

 

빙하지대를 가다

                        /이혜민

눈부신 설원이다

발자국 하나 보이질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하나 두리번거려도

처음과 끝을 알 수가 없다

수만 갈래 있었던 길도 하얗게 덮여

박힌 발자국조차 스스로 뺄 수가 없다

어디서 해가 떠 어디로 지는지 모를

한 가운데 서서

온 몸이 꽁꽁 굳어온다

발자국에 고인 햇살을 따라 없던 길을 만들어

제자리를 맴돌다 주저앉아 한 점

마침표로 찍히게 될지도 모를

마침표 속에 갇혀

촉 무뎌진 지팡이 하나 달랑 들고

갈 수가 없는, 천 년의 길에서

돌고 도는 A4

 

 

눈부신 설원에 갇힌 적 있지요. 읍내에서 집으로 가는 하굣길, 눈은 퍼붓고 발자국은 다 지워지고 논밭은 눈 속에 파묻혀 길과 혼연일체가 되어버려, 하늘과 땅과 나도 혼연일체가 되어버렸었지요. 그렇게 막막한 지경이 오면 머릿속조차 하얘집니다. 내가 찾아가야만 하는 길은 얼마나 아득하고 요원한지요. 그것이 시의 길이라면 더욱 그렇지요. 시인이 표상한 설원은 시인들이 길 없는 길을 헤쳐나가야 할, 자기만의 발자국을 꾹꾹 눌러 찍어야 할 미답의 땅입니다. 방향타도 없고 지형지물도 없을 때의 막막함과 고뇌를 아시는지요. 길인가 하면 아니듯 하고 찍은 발자국은 흔적 없이 지워지는 이 시시포스의 형벌을 아시는지요. 제자리를 맴돌다 주저앉아 한 점 마침표로 찍히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을 안고 무딘 촉을 벼려보는, 그러나 A4는 눈부십니다. 무한정의 설원이기에,

/이정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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