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줄장미

2018.11.20 19:36:00 16면

 

 

 

줄장미

/이화은

입술이 새빨간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손톱이 긴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뾰족 구두를 신은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녹슨 시간의 철조망을 아슬아슬 건너고 있는

아버지의 무수한 여자들

 

 

 

 

 

저런, 저런! 저 요망한 것들. 입술을 새빨갛게 칠하고 손톱을 길게 기르고 뾰족구두를 신고 사내를 유혹하다니. 오뉴월 담장에 흐드러진 줄장미는 화려하다 못해 요염하다. 우아하거나 화사한 꽃들과는 차원이 달리 강렬해서 줄장미의 빨강은 섬뜩하다, 때로 천박하다. 쪽진 머리와 무명적삼, 화장기 없는 수수한 모습의 여염집 아낙을 어머니로 둔 그 시대 우리들에겐 저 화냥기가 가당키나 한가? 저런 여자는 모두 첩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들은 왜 주책없이 그런 여자들 치마폭에 빠져 놀아났을까. 화자에게는 무수했던 아버지의 여자들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가 부지불식간 내재해 있다가 녹슨 시간의 철조망을 건너와 불쑥 되살아났으리라. 초여름이면 전국 방방곡곡에 저 도발적인 첩들이 줄줄이 매달려 추파를 던지리.

/이정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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