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무어별(無語別)

2018.12.05 19:56:00 16면

 

 

 

무어별(無語別)

                                     /임제

十五越溪女(십오월계녀) 열다섯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羞人無語別(수인무어별) 남부끄러워 말없이 이별했네

歸來掩重門(귀래엄중문) 돌아와 겹문을 닫아걸고

泣向梨花月(읍향리화월) 배꽃 같은 달을 보며 눈물짓네

 

 

나는 삶이 신산스럽거나 적적해질 때 시조나 한시를 읽곤 한다. 임제의 ‘무어별(無語別)’은 봄밤이 지닌 비애감에 쐐기를 박는 형국이다. 달이 가장 밝은 윤이월 보름날 삼경(23시부터 새벽 1시까지)에 하얗고 다문다문 핀 배꽃에 쏟아져 내리는 달빛은 사람의 심사를 흩트려 놓고도 남는다. 이 시조는 봄에 암송하면 좋고 그 시각이 밤이면 더욱 좋다. 김월하의 시조창을 틀어놓거나 황병기의 대금 연주 그도 아니면 강은일의 해금 연주를 곁들이면 그것 또한 좋다. 꽃 피려는 매화나무와 매화나무 아래에 번지는 꽃 그림자와 달빛이 더 해지면 금상첨화다.‘무어별(無語別)’을 읽다 보면 나는 신윤복을 불러오지 않을 수 없고, 그의 ‘월하정인’ 속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에 취해 나는 쓰개치마를 입은 여자가 되기도 한다. 아마도 신윤복은 화폭 바깥에 이화와 매화를 몇 그루 심어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거리에는 겨울바람이 가득 차 있지만, 겨울의 허리쯤에는 봄이 자라고 있을 터이다. /서안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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