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필립 거스턴의 세계 순회 전시가 정치적인 이유로 연기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거스턴의 작품 속에 묘사된 인종주의 단체 '큐 클럭스 클랜'(KKK) 의 이미지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운동을 자극할 것을 우려한 미술관들이 회고전을 연기하자 미술계가 '작품을 거꾸로 해석했다'며 비판에 나선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거스턴의 회고전을 연기한 미술관의 결정을 비판하는 평론가 배리 슈웹스키의 공개 항의문에 작가와 전시관계자 등 미술계 인사 2천 명이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거스턴 작품의 의미가 관객에게 좀 더 분명하게 해석되는 시점까지 전시회를 연기한다'고 밝힌 워싱턴 국립미술관과 영국 테이트모던의 발표가 관객의 지적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20세기 초반 미국 사회의 반(反)유대주의와 인종차별을 직접 경험했던 거스턴의 작품세계를 관객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 자체가 미술관 측의 편견이라는 논리다.
이들은 거스턴의 작품에 등장하는 KKK의 하얀 두건 이미지가 인종주의의 폭력성을 고발하기 위해 사용된 장치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거스턴의 딸 뮤사 메이어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거스턴의 작품은 미국 백인사회의 일상에 숨겨진 인종차별에 대한 동조 행위를 다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작품은 볼 때가 아니라 보지 않을 때 위험하다"고 말했다.
KKK 이미지를 관객의 눈앞에서 치우는 것이 현실 세계의 인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미술계 인사들은 미술관이 논란을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거스턴의 회고전을 당초 예정대로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거스턴은 잭슨 폴락 등과 함께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주자로 활동했지만, 1960년대 후반 만화를 연상시키는 가벼운 구상회화로 미술계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스턴은 1980년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