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재미있는 인천 4 - 인천역으로 간다

2020.11.03 09:03:21 15면

 

 로마제국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걷는 운동의 효용을 극찬한 인물로서 이렇게 말했다. “걸음이 문제를 해결한다.”

 

비만에 시달린 것도 아닐성 싶은데 왜 그런 말을 남겼을까. 걷기는 신진대사를 발생시키고 두뇌에 좋은 최고의 건뇌술(健腦術)이라 해서 만들어 낸 말이 아닌가 싶다. 복잡한 문제에서 탈피, 일정한 심리적 간격을 만들어 탄탄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의 발로로서 행선(行禪)을 향한 불교의 맥락과 통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나의 방식대로라면 걷기는 평화다.

 

걸어서 불편한 진실로 이루어진 경인선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인 인천역으로 나는 간다. 중구와 동구의 경계선이었던 철도 건널목이 없어지고 지금은 고가교가 설치되어 동구로 밀려오던 수많은 인파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지만, 동구는 경제개발 시기 인천의 젖줄 같은 곳이었다.

햇살이 쇠잔한 오후의 인천역은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 두기로 더욱더 쓸쓸하다. 뒤쪽 월미도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차이나타운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자유공원(응봉산, 鷹鳳山)의 바람이 마주쳐 체감온도는 한겨울 못지않다.

 

이 가을날 동시다발로 느껴지는 시가 머리를 스친다. 도쿄제국대 국문과 출신 나가노 시게하루(中野重治)의 ‘비내리는 시나가와역’과 광복 후 월북한 시인 임화((林華, 1908~1953 본명 仁植)의 ‘요코하마 부두’가 나를 우울케 한다.

 

식민지와 피식민지 간의 위계로 보여주는 저항의 서정시는 이별의 상징적인 뉘앙스를 주는 바다 쪽과 숨길 수 없는 지계(地界)인데도 마음대로 조계(租界)처럼 내 땅을 유린, 응봉산 가운데 놓인 인천역의 지정학적 지리학적 슬픔, 그리고 역사의 아우라 때문일 것이다.

 

경인선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철도는 대륙을 공략하는 첫걸음으로 경제수탈을 목표로 하는 표상이 바로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한국철도의 원조 뒤 식민지로 바뀌어 가는 관문이었다는 불명예 말이다.

 

‘구름을 잡으려고’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잘 알려진 소설가 주요섭(1902~1972)의 장편 소설이다. 그 소설 속에는 경인선을 이렇게 묘사했다. “제물포 그것은 조선이 열어 놓은 출입문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위험한 출입문이었다”고 날 선 비판을 가했던 것이다.

 

한반도를 두고 철도건설이 횡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는 조선인을 위한 건설이지만 종으로 철도 침목을 깐 것은 분명 대륙침탈의 첫걸음으로 삼고자 했던 야심의 경인선으로 시작된 철도는 야욕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것이다.

 

고종의 총애를 입은 미국의 사업가 제임스 모스와 이또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친구이며 일본 자본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가 통정대부와 조선 상무위원에 위촉된 권세를 가지고 북 치고 장구 치는 동안 우리는 구경만 할수 밖에 없었다.

 

경인선은 개통 당시 인천, 축현(동인천), 우각(도원), 부평, 소사(부천) 오류, 노량진을 끝으로 7개 역이었다. 인천-노량진 간 80리(33.2km) 길을 도보로 꼬박 하루가 걸리던 먼 길을 1시간40분에 도달하니 놀랄 수밖에 없는 충격을 두고 독립신문에는 “소리는 우레같이 천지를 진동하고(...) 인천을 순식간에 당도하였다”라고 썼다.

 

모갈 증기기관차 4대로 사람이 탑승하는 객차 6량, 화물수송용 28량의 경인선은 효율적, 합리적인 면에서는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고, 노선 자체가 기형적 한국의 철도원형을 만든 것에 만족해야 했었다.

 

미국의 사업가 모스로부터 거액을 주고 사들인 일본(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속셈은 따로 있었음이 자명한 사실이다. 미국 공사 알렌의 별장이 우각현(현 도원동)에 있어 우각역이 생긴 것처럼 ‘조선’은 그들의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인천역, 이곳에만 오면 살아나는 옛날, 분통이 앞을 가려오는 심사는 필자만이 느끼는 것일까. 경인선을 필두로 한국철도를 군사용으로만 검토했던 일본의 속샘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말없이 가고 온다.

 

식솔이 대문을 나설 때 지극히 간단한 인사말, “갔다 올게”처럼 경인선은. /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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