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예술감독 원일)가 6개월간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준비한 공연, ‘메타퍼포먼스: 미래극장’이 지난 6일 드디어 공개됐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체험형 공연’, 시간 제약을 없앤 공연’, ‘게임의 특성을 도입한 공연’ 등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수식어들이 공연에 기대감을 키웠던 게 사실이다.
여러 차례 설명을 듣고, 자료를 보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공연의 모습은 있었다. 그림으로 그리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다.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떠했든 상상했던 공연의 모습과 실제가 일치했는지 묻는다면 거의 비슷했다고 답하겠다.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새로운 시도였다는 점과 공연예술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 과감함은 높이 살만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이번 공연을 출발점으로 다른 신선한 기획도 기대해볼 만하다. 비단 시나위오케스트라의 공연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색다른 기획의 적용이 가능한 장르와 그렇지 않은 장르가 있겠지만 하나를 보고 나니, 또 다른 하나를 기대하게 되는 심리가 발동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공연 전달자가 된 현장 관객
본 공연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오후 5시.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시연회가 열렸다.
관계자와 시연회 참석자로 가득 찬 현장은 매우 분주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몇 분 전인 걸 감안하면 생경한 모습이다.
여느 공연의 관객이라면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며 조명이 켜지길 기다려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관계자와 관객이 함께 분주함 속에 뒤섞여 있었다.
문득 모두 하나가 돼 공연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기자 혼자뿐이었을까?
25명의 현장 관객 중 웨어러블 카메라 기기를 몸에 부착하고 공연에 참여하는 5인의 역할이 궁금했던 터였다. 기기를 착용하고 기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등 뒤로 오는 메탈박스는 몸 앞으로 오는 길쭉한 흰색 아크릴 상자와 연결돼 있고, 상자 위에는 카메라가 부착돼 있었다.
기자가 맡은 건 1번 기기였다. 카메라를 장착한 관객은 자신이 보는 것을 온라인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공연 관람자이면서 공연 전달자인 셈이다.
두 명의 진행자가 공연 시작을 알린 후부터 게임인 듯 게임 아닌 공연이 펼쳐졌다. 진행자는 게임처럼 흐르는 이 공연의 온〮오프라인 현장 상황을 동시에 확인하며 중계자 역할을 한다.
매 순간 진행되는 온라인 투표와 그 결과에 따라 움직이는 현장 관객들. 어떤 공연이 펼쳐질지 궁금해할 만한 시간도 없다.
진행자가 던지는 질문과 2개 선택지에 따른 투표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고작 1분. 결과가 발표되면 그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모든 것이 즉흥적이다.
4개 극장을 돌며 만나는 공연은 모두 관객의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무대와 객석이 따로 구분되지 않은 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어떻게 보면 관객이 무대 위로 오른 것 같은 모양새다. 공연은 내내 관객과 함께 펼쳐진다.
기기 착용자는 공연 자체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특히 아크릴 박스에 붉은 조명이 켜져 메인 카메라가 됐음을 인지했을 때는 뭔가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겨 맘 놓고 공연을 볼 수가 없었다.
생생한 공연 자체의 감동은 기기를 착용하지 않은 현장 관객(갤러리 20인)에게 있었을 듯하다.
휴대전화로 온라인 투표에 참여하기도 하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며 자유롭게 공연을 즐기는 상황에서 기존의 ‘극장’이라는 개념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공연을 이끄는 온라인 관객
이 공연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온라인 관객의 역할이었다.
기자는 6일 시작된 본공연 중 술시(戌時)와 해시(亥時) 회차에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공연은 트위치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인 트위치로 참여한 온라인 관객은 공연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다.
게임 영상을 보듯 현장을 감상하면서 온라인 관객이 할 일은 채팅창에 댓글을 부지런히 다는 것이다.
온라인 관객에게 이 공연은 하나의 게임이었다. 게임 중계자(공연 현장 진행자 2인)가 던진 질문에 대한 선택지 둘 중 하나를 고르고, 정해진 형식에 따라 댓글을 달면 각자의 의견이 반영된다.
현장 관객이 갈 극장과 앞으로 펼쳐질 공연 모두 온라인 관객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카메라 기기를 장착한 현장 관객에게 원하는 것을 비춰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공연에 대한 감상을 서로 공유하거나 궁금한 내용을 물으며 능동적으로 공연에 참여한다.
그렇기에 어느 면에서는 이 공연을 이끄는 주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기존 공연들이 온라인을 통해 그저 눈으로 감상할 것을 강요했다면 이번 공연은 직접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24시간 동안 12회차 진행되는 모든 공연에 참여하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매 회 공연의 모습이 모두 다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같은 게임이라도 플레이어에 따라 진행이 전혀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관객이 달라지면서 앞선 공연과 다른 영상이 보여지기도 하고, 투표 결과가 달라져 극장에 방문하는 순서와 공연 내용이 달라지는 걸 경험하면서 느끼는 재미가 있었다.
온라인 관객으로 참여하면서 좋았던 점은 공연의 내용을 상세하게 알 수 있었던 점이다. 댓글창을 통해 제작진이 전달하는 공연 내용 메시지를 볼 수 있었기에 말이다.
현장에서는 잘 들리지 않던 중계자의 친절한 설명도 깔끔한 음성으로 들을 수 있어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온라인 관객 대부분은 현장 관객만이 느낄 수 있는 ‘생생함’을 부러워했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공연
코로나19로 준비하던 공연 계획이 무산되고, 관객이 극장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을 겪으면서 시작된 새로운 극장에 대한 상상이 이 공연의 시작이었다.
온라인으로 쏟아내는 수많은 비대면 공연들에 과연 관객이 실제적으로 참여했다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이 출발점이 된 것이다.
그것은 ‘미래 극장은 어떤 모습일까’로 확장돼 이번 공연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동안 수동적일 수밖에 없던 온라인 관객에게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키를 쥐어준 것은 분명 신선한 시도였다.
앞서 각 공연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게임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연주와 어우러졌던 것을 떠올린다면 이 역시 공연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또 온라인 관객과 현장 관객, 공연 관계자들이 서로 뒤얽혀 만들어가는 공연이 영상으로 기록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 행위로 보여졌다.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작품을 보는 느낌이 전달된 것이다.
공연단의 연주와 무용에 온전히 집중하는 기존 공연의 형태에서 잠시 일탈한 이번 공연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싶다.
[ 경기신문 = 박지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