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수의 인천얘기 5 - 개항장<3>

2020.11.10 13:14:51 15면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글쓴이가 현장 기자였을 때인 1990년대, 몇 차례 외국에 갈 기회가 있었다. 동행이 꽤 많았던 시찰을 겸한 단체여행이었다. 물론 주마간산(走馬看山)이었지만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다.

 

대부분 그 때의 기억은 가물가물해졌으나 아직도 몇 곳의 형상과 느낌은 또렷이 남아 있다. 어깨를 비껴가며 자갈길 위를 걸어야 했던 스웨덴 스톡홀름의 중세 거리, 미로 같았던 중국 상하이의 명(明)나라 때 상가와 외탄((外灘), 온천도시 일본 유후인의 단아한 풍광, 수 백 년 내력을 지닌 노르웨이 베르겐의 아름다운 목조건물들이 건네 준 뭉클한 감동은 가끔 내게 상상의 여행보따리를 꾸리게 하곤 한다.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세계 유명 관광도시들은 저마다의 특색을 갖고 있다. 길게는 수 천 년, 짧아도 수 백 년에 걸쳐 오롯이 이어져온 그곳의 역사·문화·자연유산은 그 자체에서 발산되는 뛰어난 매력으로 오늘도 세계 곳곳으로부터 사람들을 오고, 머물고, 다시 찾게 한다.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로는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강화도와 개항장 일대를 꼽을 수 있다. 2014년 세계 3대 권위의 기록인증기관 중 하나인 미국 월드레코드 아카데미로부터 ‘단일 지하공간에 가장 많은 점포 입점’ 사실을 인정 받은 부평 지하도상가도 최근 중국을 비롯한 외국 관광객들이 ‘쇼핑’을 위해 즐겨 찾으면서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다양한 역사유적과 유물이 즐비한 강화는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곳이다. 근대 들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이어 1876년 2월 조선국 판중추부사 정일품 접견대관 신헌(申櫶)과 일본국 전변변리대신 육군중장 겸 참의 개척장관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 간에 통한의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개항장을 강화에 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이 열리면서 이곳에서부터 시발된 거센 변화의 바람과 서양 문물의 유입, 외세의 각축, 온갖 인간군상들이 뒤섞였던 다양한 삶의 이야기 등 수십 년 간 응축된-다른 곳이라면 수백 년 동안에나 가능할 법한- 그 역사와 또 그것이 우리 근·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의미에서 볼 때 강화와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

 

또 외교나 군사, 상업, 건축, 공직근무 등 다양한 이유로 개항장에 드나들고 정주했던 많은 외국인들이 남긴 삶의 발자취 또한 그 후손들에게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부분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역사성과 상징성, 공간성의 측면에서 무궁무궁한 ‘스토리텔링’의 콘텐츠가 개항장, 그 안에 숨쉬고 있는 것이다. 씨줄과 날줄을 어떻게 엮어내느냐에 따라 관광명소로서 이곳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3차례에 걸쳐 다소 지리하다싶게 개항장을 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1년 365일 늘 볼 것과 즐길 것이 있어야 한다. 우리보다는 상대의 입장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훌쩍 나서서 가고 싶을 때 가고, 보고 싶을 때 보면서 마음의 안식과 위안, 감동을 받기를 원한다. 물론 특별한 이벤트는 특정한 시기에 열려야 희소성과 가치가 배가되지만 그만의 정취를 흠뻑 담은 야시장이나 벼룩시장, 향토음식점, 기념품점, 간단한 공연행사 등은 넉넉한 시공간을 통해 이어져야 한다.

 

몇개 남지 않은 당시의 유적을 잘 보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100년을 조금 넘은 기간 세월의 풍파와 화재 등 사고, 전쟁의 포화, 개발 광풍에 휩쓸려 수 많은 것들이 자취를 감췄고 지금도 하나 둘 사라지면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유적과 유물은 관광인프라의 기본이다. 그렇다고 이미 없어진 근대건축물의 무작정적이고 단순한 복원이나 재현을 굳이 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싶다. 몇 년 전 ‘존스톤 별장’ 복원 추진 사례에서 보듯 ‘외세’, ‘식민’과 관련된 역사성 시비 등 소모적인 논쟁의 소지가 여전하고 역사적 교훈이나 관광의 측면에서도 별 효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지금까지도 꿋꿋이 남아 있는 자산들을 잘 활용해 19세기 근대, 그 때의 개항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지속가능한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인위적이나 강제적이 아닌, 입소문을 통해 마음의 길을 따라 자연스럽에 사람들이 찾아와 머무는 그런 곳이 진정한 관광지요 문화도시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된 상태지만 지난해까지 인천항에는 수 많은 크루즈가 오갔다. 그러나 선객들이 인천땅을 밟는 순간은 배에서 내릴 때 뿐이고 곧바로 버스에 올라 서울로, 경기도 곳곳으로 빠져나간다. 그들이 인천땅을 다시 밟는 것은 다른 항구로 가기 위해 배에 오르기 위해서다.

 

안타깝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그랬다. ‘19세기 제물포’가 오롯이 재현된 인천 중구 개항장이 이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해본다./ 인천본사 편집국장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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