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재미있는 인천 5 - 길에서 묻다, 해망대(산) 그리고 올림포스호텔

2020.11.17 09:37:08 15면

 걸을 때 다가오는 모든 사람은 리듬에 의해 내 몸에 체감된다.

근대화를 속도의 문제로 환원시켜 가는 길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 가야 할까. 되돌아오는 길은 인문(人文)이며 인문(人紋)으로 사람의 무늬를 살피고 헤아리는 공부도 흐르는 역사이며 길에 선 집들은 바뀌어 온 주인의 의식 속에서 관심을 낳고 느끼며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또 다른 역사이다.

 

다리의 힘이 풀려 내려오는 응봉산(자유공원), 존재론적 차원에서 본다면 소외(疎外)되었다. 소내(疎內)되는 듯하면 그나마 다행스런 곳이지만, 어느 도시든 역사 복원의 노력은 좋으나 정확한 고증과 연구검토 없이 실행한다면 아니 감만 못한 짝퉁을 만드는 것 아닐까.

 

응봉산 줄기가 서쪽으로 흘러내리다 바다를 향해 다시 솟아오른 모양새로 언덕보단 조금 높고 산으로 보기는 협소한 곳, 특별한 이름도 없이 1965년에 지어진 ‘올림포스호텔’을 따라 늘 우리(시민)들은 어정쩡한 명칭을 붙여왔다. 옛적에는 그 동산을 해망대(海望臺), 또는 해망대산(山)이라고 불렀다. 지형이 높은 곳으로 한때는 천주교인들을 처형, 효수했던 곳이기도 했다.

 

전망대는 내륙에서 멀리 바라다보며 경치를 음미하는 곳이라면 해망대는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높고 평평한 지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리적 특성상 이곳은 바다를 조망하는 단순한 뜻보단 이동하는 선박(전함)을 감시한다는 의미가 더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개항(1883)을 전후로 하며 인천은 다국적군의 진출이 어느 지역보다도 더 성행, 그 다툼 또한 빈번한 곳으로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요충지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 전기 왜군을 막기 위한 수군의 군영을 전국 해안에 설치하기에 이르렀을 때 인천에서도 이 해망대산에 제물진(濟物鎭)을 설치했다. 1656년 강화도로 이전하며 다시금 군사시설이 설치된 시점은 바로 개항을 앞둔 때였다.

개항 1년 전 일본은 영사관을 설치하고 개항 이듬해(1884) 영국이 두 번째로 영사관을 설치하기에 이르렀으니 바로 이 해망대산이다.

 

러시아도 산 아래쪽 항구가 보이는 곳에 영사관을 설치하니 지리적인 면을 감안했을 때 노른자위 같은 곳임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모든 나라의 영사관은 일본을 빼곤 일제강점기로 접어든 1915년을 기점으로 영국 영사관의 업무도 끝나고 ‘시립예술관(1946)’ ‘인천 무선전화국’ 청사로 사용되어 우여곡절을 겪은 곳이기도 하다.

 

그 우여곡절의 중심부엔 해방 직후 인천의 진보, 좌경문화인들(화가 이인영 등)의 아지트였다는 문제가 비껴갈 수 없는 원인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흔적이 여실한 그곳엔 지금 무엇이 남아있을까. 답은 동란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이다. 적색과 녹색 해안의 위치가 인천역과 월미도를 거점으로 공격과 방어의 연속 속에서 남아날리 없는 물건들, 참 아쉽기 그지없다.

 

1910년대 인천의 산업은 정미업 다음으로 담배제조 산업이 성황을 이루었다. 1901년 그리스인 ‘벤들리스’가 중구 사동에 ‘동양연초회사’를 설립했다 1903년 문을 닫은 후에 지배인으로 근무하던 미국인 ‘해밀턴’에 의하여 ‘제물포 연초회사’를 이 해망대산 초입에 설치해 ‘홍도페’, ‘산호’, ‘뽀삐’라는 상표로 1일 30만 갑의 담배를 만들었으나 이 또한 상륙작전 포화에 없어졌다.

만주사변 이후 해방 전까지의 기록이 부재, 이 해망대산의 역사는 묻혀 버리는 비운을 겪으며 1965년 ‘올림포스호텔’ 건립, 인천의 최초 엘리베이터가 등장하는 기록을 갖게 된다.

 

인천항은 외국 선박이 입출항하는 관계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운영하는 사업을 하게 된다. 2004년 카지노를 운영하던 ‘파라다이스’가 호텔을 인수하여 이름을 바꾸어 운영해 오다 2015년 인천공항 개항에 맞추어 업무지구로 호텔사업을 옮겨가는 비운이 또 뒤따르게 된다.

 

덩그러니 건물만 있는 이곳 해망대산에는 그림자만 길게 드리우는 공가로 기억의 창고에서 웅크리고 있다. 어떻게 변화되며 무엇이 들어올지 재탄생의 기대감이 크다.

 

다시금 길에서 길을 묻는 인문학의 꽃이 피어나 인천의 또 다른 명승지로 관광의 물꼬를 열었으면 좋겠다./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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