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재미 있는 仁川 14 - 길을 걷다 보면 그리운 얼굴들이

2021.03.22 14:53:38 14면

시집 <인간 고도>와 인천

김 학 균

시인, 인천서예협회고문

 

길을 걷다보면 그리운 얼굴들이 머리에 그려진다.

왜 가신 분들이 그립냐면, 시주(詩酒), 화주(畵酒)의 막연한 추억보다는 그림이면 그림, 글이면 글 속에서 군살이 없고 여백을 살려내며 또한 충분히 사용해 잔상을 갖게 하는 그 배려가 좋다는 것이며 외화(外華)에 골몰하는 시대를 살수록 언어를 지극히 아끼며 쓴, 먹그림 같이 질박하게 살다간 그들이기에 더욱더 그립다는 것이다.

걷고 있는 길은 개항기 여명에 맞물려 잠재적 역사 자산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는 하나 성형수술의 흔적으로 발로 보고 눈으로 가기가 옛 같지 않지만 그래도 다행인 듯 길은 살아있다.

중앙동 사거리, 공원 층층대를 올라가고자 하는 길, 경기후생병원(현 국제사법교육원)과 그리고 지금까지 마사회가 있는 곳, 이 네 모퉁이 길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날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옛 시청 가는 길에 외항선원의 검진을 위한 후생병원하며 아래쪽으로 ‘마로보시’(대한통운)와 미군소방서, 경기도 경찰국(현 하버파크호텔) 위쪽으론 공원 가는 길로 갈라지는 요충의 땅이 일반적인 요인이고 한때나마 어려운 시절(61년 5.16 군사혁명전) 없어진 경기매일신문사 건너편 ‘병사구사령부’였던 건물에 인천시 문화회관을 열고 ‘경기예총’도 간판을 걸었으나 여의치 않아 9대 인천 시장 김진두에 의해 이 네거리 위쪽(중앙동 3가) 민가 2층 건물을 매입 문총인천지부와 인천문화원 그리고 예총이 입주 사용하게 되었다. 서너 평의 좁은 공간에 말만 문화회관이지 사무국 직원이 상주, 업무를 할 공간 없이 난감할 때 지부장(이종화)이 원장으로 있는 ‘공립병원’으로 들고나는 업무처리의 연속, 초창기 예총(경기)은 참으로 지난 했었다. 후로는 10대 유승원 시장의 배려로 시립도서관(율목동) 2층을 사용하게 되어 숨통 트이긴 했어도 시민들의 발길이 뜸한 곳으로 문화공간의 몫을 다하지는 못하였다.

공립병원(원장 이종화(사진가))이 있던 곳은 연립주택이 들어서 그 기억을 지워버리고 있으며 민가 2층을 매입하여 ‘회관’으로 쓰고자 했던 그 시절 도료상회 건물은 옛모양 그대로 숨죽이며 초라하게 남아있다. 모든 것이 하나에서 열까지 그대로 있길 원 할 수는 없겠지만 아쉬움이 그지없다.

어느 사진집의 저자가 쓴 서문에는 ‘보톡스’를 놓고 ‘박피’ 수술을 받은 도시 재생사업으로 사라져가는 그것들이 안타깝다고 했다. 맞다. 그러나 ‘보톡스’에 ‘박피’ 그것뿐일까. 아예 흔적없이 헐어버리고 다시 세우는 성형수술이 도시 건물에서도 만연하고 있으니 옛것이 좋다는 말이 무색한 것이다.

아직 사거리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이유가 또 있다.

인천을 주제로 한 시작품을 남긴 시인들 많지만 조병화 시인만큼 많이 남긴 시인은 없지 싶다. 1954년 3월 26일 발간된 제 4시집 <인간고도>가 이 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더욱이 이 시집은 평론가 김양수 (당시 20세 중학교 5년제의 3학년(현 고2))에 의하여 원고정리 교열, 교정이 이루어짐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서울의 <산호장> 출판사 간행이지만 인천에서 인쇄하여 한영사(업주, 김성민) 출판으로 되어있는 시집으로 ‘한영사’는 바로 이 거리 (마사회 건물)에 있었던 인쇄공장 이었다. 지금은 언감생심 출판사 이름만 빌린다는 것이 있을 수 없지만 그 시절은 그랬는지 모르지만 <한영사 인쇄소> 덕택으로 나온 <인간고도>는 소설가 황순원의 사회로 소공동 서울 치과대 구내식당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었다. 47년 9월에 인천중학교로 와 햇수로 3년(17개월) 후 서울 고등학교로 직장을 옮긴 후 다시 인하대학교로 온 조병화 시인은 안성이 고향이지만 제2의 고향은 인천이 아닌가 한다. 그때 시인이 살던 집은(부인의 산부인과병원) 어림잡아 200m 아래 관동 쪽(현 흐르는 물) 이었다.

하늘이 감추고 보호한 땅, 이곳을 걷는 기쁨은 색이 다가오고 삶과 영감이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먼 훗날 그 길이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느냐 하는 것. 길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이 길들은 슬픔이 꽉 찬 길인지도 모르겠다. 해안동 다국적군들이 점유하는 철조망의 경계 이쪽, 걸어가면서도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외로운 섬이 이곳에도 아직 남아있구나.

 

[ 경기신문 = 이인수 기자 ]

이인수 기자 yis622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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