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악몽보다 끔찍한 현실

2021.07.08 06:00:00 13면

 

33년 전 오늘, 1988년 7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이라는 제목의 7.7선언을 발표했다. 7·7선언은 적대적인 냉전체제에 기반해 있던 통일외교정책의 근간을 북한 및 사회주의권을 대상으로 상호교류와 협력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6개 항의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이 선언이 나올 당시 대한민국은 혼돈스러웠다. 87년 6월 항쟁을 거치고도 대통령선거가 군부의 집권연장으로 귀결되자 길거리는 ‘더 많은 자유와 더 넓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투쟁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났다. 청년학생들은 '6·10남북청년학생회담'을 강행하며 경찰과 충돌했다. 88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대한민국은 중무장한 백골단과 전투경찰에 시민들이 쫓기는 군화발과 지랄탄의 나라였다. 이런 상황에서 선언은 자뭇 생뚱맞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역사적 전환의 작은 디딤돌이 되었다.  

 

그때 길거리를 뒤덮었던 ‘자유’와 ‘민주’, ‘통일’을 열망하는 외침들은 33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7·7선언의 요체가 된 남북교류는 여전히 어려움에 처해있기는 하지만 정치적 자유와 형식적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80년대의 열망은 진작에 완성되었다. 누구도 정부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모욕하는 것에도 두려움이 없다.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누구도 부인 못할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시민들의 피로 만들어낸 세계사적 성취에 우리 스스로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만 국뽕에 취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 정권은 권력을 사유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하여 계속 국민을 약탈하려 합니다.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합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입니다” 


윤석열의 대선출마선언에 나온 구절이다. 그래.. 당신은 모를 것이다. 당신이 쓴 이 글귀들을 사람들에게 전하려 밤새 등사해서 겨우 몇장 뿌리고 외치다가 끌려간 수많은 청년들을.. 당신이 군대까지 빠지며 9년이나 고시공부에 매달린 그 시대 이야기이다. 그렇게 피 흘려 얻은 자유를 당신만큼 누린 사람이 또 있을까? 지휘권자인 법무부장관을 두 사람이나 가족까지 탈탈 털어가며 사냥하다시피해서 물러나게 했으니 말이다. 그랬던 당신이 출마선언문에 22번이나 ‘자유’를 언급하며 이걸 되찾기 위해 대통령에 나서겠다고 한다. 

 

이런 자가당착이 어디 당신뿐이랴. 전 감사원장 최재형은 “하느님의 확신이다. 원전을 조기폐쇄하면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셨다”며 감사원의 권능으로 대통령의 노후원전 폐쇄 정책을 난도질했다. 이 사람이 누린 자유는 부족했을까? 두 사람 모두 차고 넘치는 자유를 누리다 팽개치고 나가며 대통령을 하고 싶단다. 여당 대선후보 토론에서 박용진의원은 “윤석열 흉볼 것 없다. 그 양반은 한 말이 없지 한 말을 뒤집은 적은 없다”고 자당 후보를 공격한다.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칼을 꽂고, 여당후보가 야권후보를 두둔하는 이런 무제한의 자유는 어디로 귀결될까?

 

7·7선언을 한 노태우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나는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꿈을 꾸었다. 갇혀있는 두 대통령 시절처럼 다시 나라답지 않은 나라로 되돌아가는 것은 군대 두 번 끌려가는 악몽보다 더 끔찍한 현실이다.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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