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정의 '오늘의 성찰'] 증오 극복 훈련

2021.07.08 06:00:00 13면

 

“그렇게 많은 (유대인) 동포들이 고통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내면의 준비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에티는 (집단 학살의) 두려움을 직시하고 마음을 가누고 깊고 고요한 중심을 찾는 법을 배웠다. 환상에 빠지려는 유혹에 맞서 투쟁했다. 그리고 상황이 악화되자 피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심리적 연습(mental rehersal)을 했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예상함으로써 그 힘을 빼앗을 수 있었다. 

 

오늘 진정으로 경험한 것은 티데의 방 한 구석에 있는 목련이었다. 그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놀란 나는 그 자리에 뻣뻣이 굳어버렸다. 거의 5분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바닥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 거기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그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차마 그 꽃들 곁을 떠날 수 없어서 손가락 끝으로 꽃잎을 아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티데에게 “매일 네 방에 와서 이 목련을 보면 안 될까?”라고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젯밤 비를 맞으면서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먼 길을 걸어 집에 왔다. 그리고 꽃가게를 찾아 길을 조금 돌아가서 큰 장미꽃 다발을 사 왔다. 그리고 그 꽃들이 지금 여기 있다. 이 꽃들은 매일 목격하는 비참한 일들 못지않은 현실이다.

 

오늘 오후 베토벤을 듣다가, 문득 머리를 숙이고 꽁꽁 언 강제수용소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의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힘을 달라고 신에게 기도했다. 내가 힘들 때 오늘과 지난해의 여러 날들을 기억하고 거기서 필요한 힘을 얻어 삶을 원통히 여기게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처럼, 우리는 다가올 날들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날마다 길러야 한다.

 

우리를 파괴하라고 부르짖는 흉악하고 냉혹한 광신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내 천성에 맞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출처 : 《에티 힐레숨》 패트릭 우드하우스. 이창엽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21(에티 힐레숨 1914-1943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숨지다)

조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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