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영금의 시선] 국수는 오는 것

2021.08.20 06:00:00 13면

 

 

국수는 오는 것이다. 분틀을 타고 오고, 허공을 몇 바퀴 돌고 수십 개 가락을 만들어 오고, 돌돌 말려 칼에 샥샥 썰려 한 그릇 국수로 오는 것이다. 이렇게 오는 국수를 먹으면 장수한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식에는 백년해로하라는 의미로 잔치국수를 만들어 손님상에 올린다. 이러한 습속은 남북한이 다르지 않다. 삶은 면을 물에서 건져 올린다는 뜻을 가진 국수(掬水)는 북쪽에 고향을 둔 사람들에겐 일상으로 스며든 음식이다.

 

국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메밀이 많이 나는 지역인 북쪽에 국수가 있었다. 일반인들이 먹기에는 귀했던 시기 메밀로 만든 평양냉면은 서울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해방 후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피난민들은 고향 맛을 살려 함흥냉면집을 열었다. 현재 평양냉면은 메밀을 주 재료로 만들며 맛은 슴슴하게, 함흥냉면은 농마(녹말)로 만들며 매콤하게 하는 것이라고 자신들의 상표를 붙였다.

 

원조의 맛이 바래갈 때 탈북민이 이곳으로 왔다. 고구마 전분을 재료로 사용했던 함흥냉면을 원래의 감자전분으로, 슴슴하기 그지없는 평양냉면은 깊은 육수의 감칠맛으로 고향의 맛을 재현했다. 나는 서울에서 함흥냉면을 맛보았지만 함흥에 있는 ‘신흥관’에서 먹었던 농마 국수의 맛을 찾지 못했다. 함흥 ‘신흥관’ 냉면은 얼음이 비껴 있는 육수에 오이와 배, 얇게 저며낸 고기를 얹어 커다란 그릇에 담아낸다. 국수오리(‘국숫발’의 북한어)가 가늘다 못해 머리카락 같이 얇고 탄성이 있어 면발이 위장에서 그릇까지 이어진다.

 

북쪽의 국수는 재료에 따라 농마 국수, 메밀 국수, 강냉이(옥수수) 국수, 도토리 국수, 느릅 국수 등이 있다. 배급제 시절에 공장에서 만든 밀국수가 공급되기도 했다. 나의 고향은 강냉이가 많이 생산되었으므로 농마 국수보다 강냉이 국수가 더 많았다. 강냉이 국수는 기계에 열을 가해 뽑기도 하고, 강냉이가루에 느릅을 섞어 가정에서 면을 압착하여 뽑는다. 옥수수는 탄성이 적기 때문에 끈적한 점액 성분이 있는 느릅을 넣어야 국수가 된다. 식량이 부족할 때 강냉이 가루에 도토리를 넣고 만들기도 한다. 일상으로 늘 먹었던 것은 강냉이 국수와 느릅 국수이다.

 

냉·온면은 육수에 따라 이름 지어지고 고명은 계절과 손맛에 따라 다르다. 여름에 오이를 썰어서 식초를 넣고 시원하게 먹으면 냉면이고, 따뜻한 까나리 육수에 마늘, 양파를 볶아 고명으로 얹으면 온면이 된다. 남쪽에서는 멸치국물을 내지만 북쪽의 멸치는 아주 크기 때문에 육수를 내지 않고 젓갈로 만든다. 칼국수는 아주 가끔 만들었고 뜯어서 넣는다고 뜨덕국(수제비)는 애호박에 풋고추를 넣고 자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국수를 먹는 방법은 북쪽 사람들이 일가견이 있다. 가위로 면을 뭉텅 잘라먹는 것을 보고 헉~ 소리가 났는데 이제는 나도 가위로 잘라먹는 게 편하다. 그럼에도 국수 맛은 길게 먹는 것이 맛의 원조라 생각한다.

 

국수는 분틀을 타고 왕 사발에 사리워 맛으로 오는 것이다. 그리고 허공에서 돌고 돌아 가락을 만들어 음식으로 오는 것이다.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위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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