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탄현면에 위치한 아트센터 화이트블럭(대표 이수문)이 오는 10월 31일까지 민중미술 작가이자 여성주의 미술 대표작가인 정정엽의 20번째 개인전 ‘걷는 달’을 개최한다.
정정엽 작가는 팥과 콩, 나물과 싹튼 감자, 벌레와 나방 같은 소외된 연약한 존재들을 작업의 주제로 그리면서 ‘여성’과 ‘여성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그는 1988년 김인순, 김진숙, 윤석남과 함께 ‘여성미술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이 주최·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이번 전시는 ▲걷는 달 ▲얼굴 풍경2 ▲붉은 드로잉 등 총 3개의 주제로 꾸며졌으며, 동시대를 살면서 교감해온 여성의 초상을 중심으로 한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와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했던 동료작가와 활동가, 신문이나 책을 통해 공감하게 된 여성의 이야기, 우연히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까지 다양한 여성의 초상을 그려냈다.
먼저 ‘걷는 달’은 미술관과 카페, 바닷가, 숲길 같은 풍경과 공간 속 여성들의 몸짓을 읽어낸 신작 10점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홀로 걷거나 앉아있는 여성들을 그렸으며, 기존 화풍과 달리 간략한 선으로 쓸쓸하면서도 담담하게 표현했다.
‘얼굴 풍경2’에서는 2009년 개최했던 개인전 ‘얼굴 풍경’서 발표했던 작품 중 5점과 신작 6점을 선보인다. 작가 본인의 자화상을 포함해 사진가 박영숙, 여성학자 김영옥, 시인 김혜순, 미술가 윤석남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또 여성학자이자 여성문화이론 연구소 대표 임옥희, 제주에서 농사짓는 최복인, 정의기억연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인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 쉼터에서 18년간 일한 고(故) 손영미 소장,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다 숨진 최옥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심미자, 영화비평가 권은선의 초상이 있다.
‘붉은 드로잉’에서는 지난 2006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렸던 ‘지워지다’ 전시에서 보여줬던 사회의 무관심과 폭력으로 사라지는 여성들을 그린 드로잉 작업과 신작 드로잉을 공개한다. 작가는 쉽게 잊혀지는 여성의 삶을 증언하기 위해 붉은색을 선택했으며, 붉은색 실루엣에는 연민의 동작을 담아냈다.
강성은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정정엽 작가가 찾아 나선 동시대를 사는 보편적인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다. 그는 항상 중심에서 벗어난 소외되고 약한 존재를 그렸다”고 설명했다.
특히 작품 ‘죽은 새와 함께’에 대해 “지금껏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담아냈던 대상들과 관계를 맺는 태도, 즉 생명의 생성과 소멸, 사회에서 소외된 약한 존재들에 대한 애정과 그 대상과의 공감과 연대를 잘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정정엽 작가는 “길 없는 길을 가는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떨리고 설레는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 경기신문 = 신연경 기자 ]